오늘은 고대 그리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살펴 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근방 마케도니아에서 시작해 인도까지 영역을 진출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님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두 사람이 잘 맞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의 행보를 봤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은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는 의사였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럴까요?
스승인 플라톤보다 더 현실에 입각한 현실주의적 사상을 주장합니다.
소크라테스가 같은 경우는 독배를 마시고 죽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재판대에 설 위험에 처하자 "아테네 시민들이 다시는 잘못된 철학을 하지 않도록 내가 떠난다."라고 말하며 바로 외국으로 도피 해버렸습니다. (외국으로 도피 후 1년만에 병에 걸려 사망한 점은 함정입니다. ;;) 이런 점만 봐도 현실주의 적인 성향이 묻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플라톤과 비교하며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주장하며 이상주의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 일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합니다.
본질(이데아, 다른 말로 형상이라고도 합니다.)은 개별 사물 속에 있다는 겁니다.
본질은 이데아 세계의 있다고 말하던 플라톤과 다르게 말 그대로 현실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 속에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실주의입니다.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 사물은 물질적인 재료가 되는 '질료'라는 것과 설계도, 원리, 본질, 이데아에 해당하는 '형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집을 예시로 들다면 집의 실제적인 재료들. 콘크리트, 철근, 벽돌 이런 것들이 질료가 되고 그 집의 본질인 설계가 바로 형상이 되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목적론적 세계관 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고 하는데요, 세상의 모든 존재는 존재하는 목적이 있다! 라는 사고 방식입니다. 참고로 나중에 생활과 윤리의 환경 윤리 파트에서도 이 부분이 나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은 동물에게 먹히기 위해 존재하고, 동물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따져보자면 이 의자는 인간이 앉기 위해 존재하고, 돼지는 인간의 이용한 일용할 양식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다.
각자 존재하는 목적이 있다는 거죠.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목적, 다른 말로 '선'을 추구합니다.
인간은 왜 살까요? 지금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뭘까요? 좋은 대학에 가려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많이 벌려고,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려고, 뭐 이렇게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최종적으로 '행복'이라는 대답이 나올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간의 최고선, 최고 목적은 바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돈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그런게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기능인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할 때, 또 나왔죠? 덕(아레테, 탁월함)을 가질 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적 기능인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해서 덕을 지니는 것이 행복에 도달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이성은 어떤 부분인지 살펴 봐야겠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정신의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째, 이성적인 부분. 이 부분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이 바로 지적인 덕(지적인 탁월성)입니다.
그리고 둘째, 감정과 욕구의 부분. 이 부분은 이성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이성의 통제와 영향을 받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은 품성적 덕(품성적 탁월성)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영양과 생식에 관련된 부분도 있지만, 이것은 이성과 관계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행복과 상관이 없습니다.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적인 덕에 철학적 지혜, 직관적 지성, 학문적 인식, 실천적 지혜 등이 있는데 지적인 덕은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머리가 좋은것 이기 때문에, 이것은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중 우리가 윤리와 관련하여 주의깊게 봐야하는 부분은 실천적 지혜입니다.
실천적 지혜는 헤아리고 분별하는 것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현실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에 맞게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또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뒤에 내용과 연결짓자면 무엇이 중용인지 알려주는 덕입니다.
품성적 덕은 용기 절제 긍지 친절 등이 있습니다. 영혼의 감정과 욕구의 부분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탁월하게 작용할 때 얻어지는 덕입니다. 품성적 덕은 반복된 실천과 습관화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용기 있는 행동을 한번, 열번, 백번, 천번 반복하면 용기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보다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품성적 덕은 중용(中庸)의 특징을 지닙니다.
중용은 한자 가운데 중, 떳떳할 용자를 써서 여기 표에 보이듯이 감정의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의 중간을 의미합니다. 영기서 중간은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산술적인 평균, 중간이 아닙니다. 그냥 말 그대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사이의 중간, 적절함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추가로 알 수 있는 부분은 악한 감정과 행동은 중용이 없다는 겁니다. 이건 당연합니다. 살인, 강도, 사기와 같은 나쁜 행동과 감정에는 적절함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품성적 덕에는 실천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실천적 지혜는 각 상황에서 선과 악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 중용인지 알려주는 지적인 덕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감정을 조절하고 알맞게 행동하려면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실천적 지혜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주지주의와 주의주의가 합쳐진 특징을 보입니다.
일단 상황에 따라 무엇이 올바르고, 선과 악인지 인지하는 지적인 능력. 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지주의. 그리고 그렇게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고 이성의 명령에 따라는 능력. 품성적 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의주의의 특징이 있습니다.
예시를 통해 중용을 한번만 더 살펴볼까요?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고 있다.' 이것은 비겁일까요, 용기일까요?
만약, 내 한몸의 출세를 위해 권력자의 가랑이를 기고있다. 이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반면에 왕이 자존심을 버리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적군의 가랑이를 기었다. 이것은 용기일 겁니다.
이렇게 중용이란 수학적, 기계적으로 무조건 중간을 말하는게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적절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 사상은 현대 덕 윤리, 공동체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쪽 계열의 대표주자가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파트가 되면 다룰 거니까 일단 이 정도로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