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은 제가 집에서 노는 줄 알아요. 엄밀히 무급 육아이니 그럴 생각하겠죠. 바깥에서 실적 올리려고 치열하게 일하는 본인에 비하면 저는 한가하게 아이 재우고 씻기고 놀고 쉰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며칠 전 오퍼가 들어왔었어요. 카타르항공 퇴사 후 국내 시중은행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적 있는데 그때는 경력단절여성 채용이라고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하는 일환으로 대기업에서 일시적으로 만든 채용이었죠.
비행기 타다 내려와서 이직해야 하는 여러 선택 사이에 은행권으로 갈아타고 싶었던 거 같아요. 신랑이 은행권에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을 거 같아요. 1년을 넘기면 퇴직금 지불 사유라 10개월 일했지만 영업점에서 근무할 때는 9-6시 근무 외 회의도 참석했으며 업무의 구분은 있지만 직원이 하는 일 다 했었죠.
인연이라는 게 제가 블로그에서 한창 비행 다녀와 일기 겸 후기를 써내려가던 시절, 그 언니는 당시 30대 초중반이었을까요. 저보다 언니였어요. 승무원이 되고 싶어했고 나이 때문에 망설였었죠. 그런 사연을 블로그 댓글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렇게 제 글이 올라올 때마다 비록 얼굴은 몰라도 댓글이 오가며 친숙한 느낌은 있었어요.
2015년 저는 비행을 내려왔고, 그로부터 4-5년이 흘렀을까요? 문득 그 언니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당장 창구업무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일이 가능하냐고요. 제가 비행 후 시중은행권에 입사한 걸 언니는 알고 있었고, 같은 은행이다보니 사내 메신저 통해서 이야기 한 것도 같아요.
결론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딸 아이를 어린이집이 아닌 집에서 맡아 키우는 이상 당장 혹은 몇 주 시간이 필요해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맡긴다 하더라도 보통 몇 주는 아이가 적응하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하더군요.
가장 큰 이유는 내년 초 이사를 해야하는 거였습니다.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 집을 지금보다 넓은 평수라는 이유 때문인지 여럿 마음가게 하는 것들로 덜컥 계약하고 온 게 바로 며칠 전이었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좋은 일 많았고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있기에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만 이미 사인하고 돌아온 이상 정해진 날 안에 잔금을 치루지 않으면 계약금 날리는 상황이 된거죠.
제 상황상 변수는 딱 내년 초에 맞물리는 것들이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이사에 만일 일을 하게 된다면 계약기간 만료 전에 주거지를 이동해야 하는 거죠.
저는 멀티 플레이어가 아닌데다 새로 들어오는 일에 이전 일이 밀려버리는 단순한 사람이다보니 이미 생겨버린 변수에 일 하는 것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문자로 전달하기 그래서 언니에게 전화로 상황 이야기하며 결국 어렵겠다고 했지요. 사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간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서 은행업이 아닌 타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면 이런저런 정황을 떠나 한 마디로 끝날 수 있지 않았겠나 싶었고 그럼에도 냉정하게 제가 일궈놓은 게 부족하기에 이렇게 들어온 오퍼에 좋아해야 하는지, 저라는 사람의 경력을 잊지 않고 그 곳을 발판으로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 생각해야 하는지요.
여럿 생각이 드는 가운데, 저를 표현하기 위한 어떠한 활동을 꾸준히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기회나 가능성을 불러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그 당시에는 모를지라도 시간이 지나 누군가는 기억하는 사람이 있겠구나 하는 거죠.
요청 수락으로 끝이 나야 완결된 거 같지만, 이 오퍼가 유의미했던 건, 최근 딸 아이 낳고 키우며 아이에게는 영향력 있을 엄마이겠지만 가정에만 있는 상황이 사회에서는 무급 인력이 된 거 같았는데 제 경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꽤 큰 위안이 되었네요. 어떠한 역할로 우위를 가리는 게 아니지만 매번 딸 아이의 엄마로만 살다가 조금 다르게 저 스스로에 대해 느낀 시간이랄까요.
오늘도 아이를 데리고 일상을 같이 합니다. 장을 보는 것도 혼자일 때는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휙 지나가도 구애받지 않는 일이었는데, 아이와 함께 하는 장보기는 아이 낮잠 재워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먼저 듭니다. 운전하는 것도 혼자일 때는 원하는 노래도 들으며 서두를 거 없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운전은 아이가 가만히 있지 않으면 변수들이 생기네요. 커브 도는데 안전띠 싫다며 울어 제끼고, 책을 보여주면 요즘 말문 트려 하는지 손가락으로 이거뭐냐며 계속 제 대답을 기다립니다.
딸, 엄마 운전 하고 있잖니?~
입장 바꿔 딸 아이도 저와 늘 동행한다는 게 얼마나 피곤할까요. 운전자는 멀미 안나는데 탄 사람은 멀미 나는 그런 기분일 거 같은데, 지금은 곤히 저에게 안겨 자고 있는 딸 아이 숨소리에 한 숨 고르고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