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항공 승무원으로 5년간 카타르 수도인 도하에 있으면서 카타르 검색어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면, 어떤 이야기로 물꼬를 틀어야 좋을까요.
카타르항공을 입사하게 된 이유를 시작해볼까요?
8학기에 졸업했으면 3.5점/4.5점으로 기록에 남았을텐데, 졸업하고 취업하는 데 부담이 있었는지 기어이 8학기 수강한 과목 중 한 과목 교수님께 과락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고 9학기를 생각합니다. 9학기는 온라인으로 수업받을 수도 있었지만, 한 학기가 더 주어지면 보다 취업노선을 확실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든 시간이 주어진다고 완성된다기보다 확고한 계획이 있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했을까요?"
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좋아해서 심리상담사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심리대학원에 진학해야 하고, 전문직 명함은 30대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 당장 가시적인 월급이 따라오는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했을까요?"
다시 한 번 질문합니다.
저는 운이 좋게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독일의 뷔르츠부르크 대학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독일은 자비로 간다해도 경제적 부담이 덜 느껴지는 나라라 상당부분 어학연수는 한 학기만이라도 다녀오는 분위기였지만, 제가 운이 좋다고 표현한 데에는 교환학생이라는 명분이 없었으면 경제적으로 자비로 갈 수 있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기번호 5번
저에게는 교환학생 선발이 좋은 기회로 보였었기 때문에 대기라는 게 의미가 없을 거 같았습니다. 누구라도 갈 거라 생각했고, 저에게 대기는 대기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성상 독일어과 교환학생은 20명으로 타과의 경우 한 자리수 선발인원에 비하면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동아리 활동하고 있던 어느 겨울날, 학교로부터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갈 기회가 주어졌는데 선택을 해달라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제 인생에 해외에 나갈 일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1년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건 유독 긴 방학기간 동안 학생티켓을 이용하여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뷔르츠부르크는 바이에른 주에 속해있는 로맨틱 가도의 시작 도시입니다. 즉 제가 이용한 학생티켓은 정해진 기간동안 바이에른 티켓으로 지역열차만 탈 수 있는 조건으로 무제한 사용가능한 티켓이었습니다. 친한 언니들과 바이에른 근교에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지만, 방학 때는 대체로 혼자 여행을 다닌 편이었으며, 여행을 떠날 때만큼 제가 누구인지에 대해 누군가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며, 타인의 시선을 바라는 여행도 아니었기에 자유로웠습니다.
잘츠부르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계에 있지만, 바이에른 티켓으로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티켓으로 다녀올 수 있었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그 곳은 지역열차 9번을 갈아타며 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무료하고 말도 안되는 시간을 기차여행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 싶은데, 그 때는 제가 갖고 있는 한 장의 티켓이 전부였던지라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겠죠.
문득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한국 기업에 이력서 등을 적어내려면 기본적으로 가족 인적 사항을 적는 필수입력이 저에게는 불필수로 느껴지던 때라 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외국계 항공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결심이 들어 바로 수개월 내 합격을 했던 건 아니었고, 지금은 코로나로 항공업계 타격이 큰 상황이지만, 당시 제가 준비하던 기간 중 2009년에는 외국항공사 채용이 1년간 가뭄이었던지라 더욱 짧은 기간 내 합격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2010년 해가 바뀌고 극과 극은 통한다는 시점이 바로 그 해였습니다. 가뭄이던 공채에 드디어 물이 들면서 채용공고가 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물이 들어올 때 노 젓어야 합니다.
1월 채용부터 꾸준히 지원하였고, 결국 그 결실은 5월에 맺을 수 있었습니다.
외국계 항공사는 직접 채용팀이 와서 승무원을 채용하기보다 지원자수가 많기 때문에 보통 대행사를 통해 채용했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5월 카타르항공 채용은 직접 카타르항공 채용팀이 한국 서울에 와서 승무원을 채용하였으며, 이 오픈데이를 통해서 합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을 비행할지 생각도 못했지만, 한국이 아니었기에 그런 삶이 가능했었나 싶기도 하고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한국은 다시 올 거 같지 않았는데, 사람 인생이 예측할 수가 없는 거 같습니다.
물론 타지에 베이스를 두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도 많고,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도 상당했습니다. 저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신랑과 결혼하면서 다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카타르항공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저의 행복이었듯이 한국에 다시 오게 된 이유도 행복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