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짝과 오프가 맞아 나가보기로 한다. 요즘 도하의 완전 더운 열기는 한 풀 꺽인다. 시티센터로 향하는 길에 길게 펼쳐져 있는 코니쉬를 바라본다는 건 언제나 이색적인 풍경이다. 돌아오는 길의 코니쉬를 따라 가로등이 간격마다 켜져있는 모습은 낮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정돈된 느낌이다. 코니쉬 한 가운데 에미레이츠 몰에서 매일 밤 화려하게 이뤄지는 초대형 분수쇼가 열린다면 '도하의 삶도 조금은 낭만적일텐데.'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 5월 오픈데이로 같이 합격한 동생인데, 오늘 밤에 한국으로 간단다. 이미 리자인(resign) 절차를 모두 끝낸 상황이라 담담해 보인다. 우리 막 비행할 때, 카트만두 비행을 같이 하고 생각지도 못한 에피소드와 사진을 남기건만 우연히 나온 시티센터에서 만난 오늘이 그녀의 마지막 날이라니, 시간이 흘러간게 야속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얼굴볼 수 있어서 다행인가.
'생일상으로 무엇을 같이 해먹으면 좋을까?'
닭을 집어든다. 최근에 엄마가 도하에 오셨을 때 해 주신 닭볶음탕도 생각나고 한국음식하면 달콤 매운한 건데, 그 매운맛의 닭볶음탕을 생각하니 어느새 생닭이 내 손에 들려있다. 미역을 불린다.
"네 생일이니 미역국 해줄게."
정작 내 생일에는 한국에 있었지만서도 방짝은 내가 미역국 하나 못 먹은 걸 기억하고 있다. 맏며느리감답게 요리하는 손이 커서 미역의 양이 엄청나게 불어나면서도 우리 둘이 반 이상 미역국 해치운거 같다. 우리는 진짜 잘 먹는다.
오늘은 A340 트레이닝이 있는 날이다. 오후 1시면 끝나니 마음만은 벌써부터 오프지만, 새로운 교육이 시작될 때면 새로운 시작을 한다. 내가 비행할 수 있는 비행기종과 파리노선이 새로이 생기는 구나. 유독 일 많은 비행이라고 하지만 크루 삶의 작은 변화는 나에게 새로운 감흥을 준다.
보잉 교육때와 A340 트레이닝 인스트럭터가 같다. 책 보고 알아서 공부하라는 스타일이라 터키 출신 타말과 신경전이 있던 그 분으로 기억한다. 입장 때부터 또 다른 신경전이 예상되나 이미 트레이닝 받은 부분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수업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고, 비행기 워크-어라운드(walk-around; 실제 해당기종에 가서 기내구조나 아이템 위치를 확인) 오가는데만 2시간 걸린다. 실제 비행기 안에서는 30분도 안 있는데 해당 비행기가 멀리 주차되어 있던 이유이다.
A340라 쓰고 에어버스 삼사공 혹은 에어버스 쓰리포티라고 읽는다. A340은 퍼스트ㅣ비지니스ㅣ이코노미 구성이 8ㅣ42ㅣ256명으로 서비스 한 번 끝내려면 완전 지치겠다.ㅋㅋㅋ 11시간이 넘어가는 비행시간에는 캐빈 천장 위로 벙크(bunk; 크루 휴식공간)도 따로 있는데, 이 기종은 수화물(cargo)의 공간 일부를 빌린 듯 캐빈 지하에 있다. 계단을 내려가야 보이고 벙크 천장도 낮아서 답답한 느낌은 있지만, 총 10명의 크루가 잘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A340기종은 주로 런던과 파리 노선을 가니, 이 벙크를 이용할 기회는 없겠다.
50문항의 테스트 중 한 문제 틀리지만 전처럼 점수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3개의 보기 중 2개는 확연한 오답인 내용으로 시험지가 구성되어 있어 초반 트레이닝 때는 한 두개 틀리는 것에 상당히 아쉬움이 남지만 실제 비행하다보면 아는 것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알기에 전보다 점수에 무던해진다.
A340 트레이닝이 마친 뒤, 회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신교육 차원의 브리핑이 이어진다. 회사광고도 세 편을 보면서 '올해의 최고 항공사' 이름에 걸맞는 캐빈크루의 모습을 우리에게 기대한다. 일년 전 트레이닝에 와 있는 듯 하다. 수업마다 '5 스타 에어라인(five-star airline)' 몇 번을 듣던가. 덕분에 입사함과 동시에 애사심도 팍팍 생겨나지만 일년이 지난 오늘, 애사심에 불타던 그 때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