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회사 그리고 고마움

회사에 대한 작은 생각

by 팥쥐아재

“안타깝게도 이번 채용 심사에 불합격하셨습니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핸드폰에 찍힌 문자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되겠지’라며 스스로 자위하는 것도 지쳤다. 6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했고, 20개가 넘는 곳에서 면접을 봤다. 부산에서 서울행 기차만 다섯 번을 넘게 탔지만, 1년을 더 준비해야 할 상황이었다.


“추가 합격하셨습니다. 이틀 뒤 신입 교육에 참여할 수 있으신가요?”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곳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앞뒤 겨를 처지가 아니었다. 취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했다. 더욱이 추가로 합격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더 큰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내 실력으로 합격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운이 좋게 취업이 된 것이니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9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언제나 일이 최우선이었다. 일 때문에 결혼 휴가를 이틀이나 반납했고, 첫째가 태어났을 때 아내를 조리원에 홀로 두고 명절 연휴 내내 말뚝 근무를 했다. 출산휴가 역시 이틀을 반납하고 일했다. 아이가 10개월 차에 접어들 무렵, 해외지사로 발령을 내고 싶은데 아이가 어려서 고려 중이라고 팀장님께 연락을 받았다. 문제가 없다며 제안을 받아들이고 중동으로 향했다. 비행시간만 10시간이 걸리는 사막으로 가족들을 뒤로한 채 몸을 내던졌다. 그게 내 소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과 소원해지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일에서도 슬럼프가 왔다. 노력과 성과에 미치지 못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가정과 직장 어느 한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몸도 마음도 쇠약해졌다. 그러다 문득 내 마음,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과 가정부터 행복해져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랫동안 아내, 그리고 회사와 상의한 끝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휴직 기간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동안 혹사했던 심신을 충분한 휴식과 명상, 운동을 통해 회복했다. 또한 일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두 번째는 가정에 행복이 넘치게 되었다. 반드시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족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빠가 회사에 가지 않아서 정말 좋다는 첫째 아들의 순수한 말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내와 오래 붙어있다 보니 내가 더 여성스러워졌나 보다.


세 번째는 아내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이전에는 체감하지 못했던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수고로움을 절실히 느끼게 됨으로써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아내는 언제나 옳다’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아집과 고정관념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네 번째, 회사에 대한 진실한 고마움이 생겼다. 우선은 육아휴직을 허락하고 복귀할 때까지 나와 가족에 대한 배려를 해주어서 성공적인 휴직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회사에게 가졌던 서운한 마음은 어느새 고마움과 열정으로 바뀌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 입사할 때부터 나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곳이 회사였다. 오랫동안 취업에 대한 고통과 불안에서 꺼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일을 통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게다가 전문지식과 능력 향상,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내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일에 대한 강박적인 책임감과 의무감을 내려놓으면서 회사를 바르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칫국을 마시는 것 같지만 복직을 하게 되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정말로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평생직장이 없다. 그래서인지 회사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은 많이 희석되어 간다. 멀지 않은 미래에 있을 퇴직을 생각하거나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을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이런 시류에는 동의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회사에 몸 담고 있는 시간 동안만은 오로지 회사와 나의 성장을 추구할 계획이다.


평생직장은 없다지만, 이 회사를 다녔다는 사실과 회사 성장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은 평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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