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가 되었습니다

사슴벌레 독박 육아 이야기

by 팥쥐아재

첫째 아이는 동물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커서 사슴벌레가 되고 싶다고 했고, 조금 머리가 커서는 동물박사가, 그리고 6살이 되자 동물 사육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동물에 관심이 많은 건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단순히 동물을 귀여워해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인지하고 서로 교감하며 배려하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마트를 둘러보는데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번 장을 볼 때면 필요한 것만 사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 곤충까지 판매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첫째의 눈에 딱 걸려 버린 것이다. 첫째는 한참 동안이나 꼬물꼬물 움직이는 곤충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첫째는 여태껏 무엇을 사달라고 하거나 떼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옷이나 신발, 장난감들 대부분을 사촌 형에게 물려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부모가 절약하는 것을 보고 배워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새로 사고 소유하면서 채우려고 하는 욕구가 적은 것 같다. 이번에도 갖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나 사슴벌레를 키워보면 정말 좋을 거 같다며 며칠을 두고 이야기했다. 이전에 강아지나 고양이, 금붕어를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는 아내의 강경한 입장으로 들이지 못하였으나 이번에는 아내도 조금 수그러 들었다. 반려동물들과는 다르게 손이 덜 가기 때문이기도 했고, 곤충들이 사육통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집안이 어질러질 걱정도 없었다. 며칠을 더 여유를 가지고 아이와 함께 의논한 끝에 사슴벌레 한쌍을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아이가 책임감을 가지고 잘 돌볼 거라는 기대는 하루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애초에 아이 혼자 힘으로 사육하기는 버거웠다. 사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암기하고 돌봐주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렸다. 어떤 흙을 좋아하는지, 습기는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하는지, 먹이는 어떻게 줘야 하는지에 대해 학습하고 책임감을 가지기보다는 곤충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컸다. 결국 사슴벌레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초반에 아내도 함께 돌봐 주었으나 열린 사육통을 빠져나와 붕붕 날아다니는 사슴벌레를 보고 기겁한 후로 더 이상 함께해주지 않았다 ㅠㅠ


사실 나 역시 곤충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조그마한 녀석들이 자신 무게의 몇 배를 들어 올리는 괴력을 가진 것도, 여섯 개의 발에 오돌토돌하게 돋아 나있는 갈고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생긴 것도... 하지만 막상 사슴벌레 집사가 되고 나니 180도 달라졌다. 매일같이 사슴벌레 영상과 글을 찾아보면서 사육 방법을 알아보았고, 사육통을 닦아주고 혹시나 먹이는 넉넉한지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수컷이 암컷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여자를 배려하지 않는 나쁜 놈'이라며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알고 보니 알을 낳기 위해 짝짓기를 피하려는 암컷과 짝짓기를 계속하고 싶어 하는 수컷의 본능 때문이었는데, 너무 심할 경우 수컷이 암컷을 죽일 수도 있다는 글을 보고 얼른 수컷을 다른 곳에 옮겨 주었다. 다행히 암컷은 몇 개의 알을 낳았고 다시 수컷과 합방해서 잘 생활하고 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 5마리는 우리 가족들의 관심과 나의 독박 육아로 폭풍 성장을 했다. 그렇게 7개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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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애벌레들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움직임이 둔해져서 걱정되는 마음에 알아보았더니 번데기로 융화하기 위한 전용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 조심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둘째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아내가 키우던 식물에 물을 주는 것을 보더니 애벌레들 사육통에 물을 들이붓고 만 것이다. ㅠㅠ 그냥 말려야 하나 아니면 구출 작전을 시행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다. 아직 전용 상태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세 마리는 다시 흙 속으로 옮겨 주었고, 두 마리는 임시 번데기 방을 만들어 주었다. 혹시나 스트레스를 받아 죽지는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확인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애벌레 상태를 확인하는데 한 마리가 애벌레 껍질을 벗고 번데기로 변한 것을 확인했다! 집사의 부주의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생명력을 발휘하여 탈피한 번데기를 보니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치 아이가 부쩍 성숙한 것을 느꼈을 때 받은 감동처럼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아이들도 책에서만 접했던 번데기를 보더니 토끼눈을 하고선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생명의 신비를 직접 보고 체험하고 있는 아이들이 이 경험을 계기로 조금 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이해하기를 바랐다.


번데기가 어른 벌레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3주간 인내의 시간을 더 거쳐야 한다. 비록 그 시간이 길고 고되게 느껴지더라도 잘 견디어 냈으면 한다. 지난 7개월 동안 낯선 환경, 싸늘한 겨울, 그리고 부모형제와 떨어지는 아픔도 잘 견뎌 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번데기에서 탈피하는 그날, 웅크렸던 날개를 활짝 펴고 자유롭게 날아 오르길 바란다. 물론 아내가 없을 때 말이다.



어렵고 힘든 시기,
번데기와 같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모든 분들도
잘 견뎌내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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