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한 깨달음
"아빠,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요."
아침부터 아이가 칭얼거린다.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이 명쾌하다. 자신은 그림 그리는 시간에 곤충을 그리고 싶고, 블록놀이를 할 때 자동차를 만들고 싶은데, 선생님은 정해진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단다. 한글 공부 역시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어서 하기 싫다고 했다. 순간 고민에 빠졌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야 할 당위성을 만들어 낸다.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를 붙들고 한참 동안 설명한 후, 욱여넣듯이 차에다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막상 어린이집에 가면 친구들과 즐겁게 놀 거야.'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시킨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여유를 찾고 나서야 아침에 있었던 일을 되뇐다. 동시에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나는 썩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부를 못했다. 그렇다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출석에 관해서만은 우등생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는데 학창 시절 내내 단 한 번도 개근상을 놓친 적이 없다. 학생이라면 응당 출석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모순되는 행동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논리라면 출석뿐만 아니라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충실하고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 행위를 하면서 자위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 동안 별 말 없이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가 다시 가기 싫다고 했다. 이번에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봤다. 현재 나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낼 시간도, 자금(솔직히 자금은 조금 빠듯하긴 하다 ^^;)도 충분한데 무엇이 문제일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루 정도 어린이집을 빠진다고 해서 큰 일 날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조급해 했을까? 짧은 생각을 거친 후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빵과 음료로 무장한 후 역시나 아이가 좋아하는 곤충들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막상 산에 도착하니 내가 더 즐거웠다. 늦가을 시원스레 흐르는 계곡물은 우리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고, 산새들 노랫소리는 비발디 사계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곳곳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는 생명들은 우리의 생명력과 공명하여 삶을 더 고귀하고 신비롭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선듯 간식을 나눠 주시는 분들 덕분에 이웃간에 정과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혼자서 이곳에 왔다면 이런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까? 아니다.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곳을 찾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다른 감명을 받는 것은 아이와 함께 천천히, 느리게 걸으면서 그동안 스쳐지나 갔던 것들을 유심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했던 이유는 단지 자신의 욕구 때문이 아니라 작은 일탈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기 위함은 아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짜릿한 일탈 때문이었는지 하루라는 시간이 더욱 짧게 느껴진다. 아이 손을 잡고 산을 내려오면서 다음 일탈은 언제가 될지 내심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