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한 깨달음
인순이 님의 "거위의 꿈"은 내 애창곡이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특히나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어릴 때부터 꿈을 포기하며 자랐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돈이 많이 든다며 말리셨다. 그래도 운동이 너무 좋아서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선생님에 반감이 있으신 아버지는 극심하게 반대하셨다. 기술을 배워 조선소 기술자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 뒤를 잊게 할 수 없다며 또 반대하셨다. 언제나 내 꿈 앞에는 차가운 벽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거위의 꿈"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규와도 같았다. '그래 언젠가는 꿈을 이루어서 아버지 앞에서 꼭 당당하게 이야기하겠어.'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학교 4학년이 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나 둘 취업에 성공하는 친구들을 보며, 꿈이고 나발이고 취업부터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동조되어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힘겹게 취업에 성공한 나는 미처 취업하지 못한 친구들을 돌아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그 순간부터 꿈꾸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빠는 꿈이 뭐예요?"
어린이집을 다녀온 첫째가 물었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 무슨 꿈이 있을까 싶었다. 꿈을 꾸는 건 아이들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둘러댔다. 아이는 시시하다며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렇게 엄마까지 곤혹스럽게 만든 후에 다른 놀이를 하러 곁을 떠났다.
갑자기 웬 꿈 타령인가 싶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어린이집에서 꿈에 관한 활동이 있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의사, 소방관, 선생님, 대통령이라고 말할 때 우리 아들은 공룡이 되고 싶다고 했단다. 그래서 선생님이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보육시설에서는 알림장을 의무로 써야 하기 때문에 기록을 해야 하는데 차마 공룡이라고 쓰지 못하고 판사라고 썼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어찌나 우스웠던지 아이를 붙잡고 다른 꿈이 또 있냐고 물어보았다. 바다가 되고 싶다고도 하고, 사슴벌레도 되고 싶다고 했다. 천진난만하게 꿈꾸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뭐든지 될 수 있을 거라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내심 내 아버지와는 다른 행동에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된 것 마냥 우쭐해졌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는 다시 꿈을 물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첫 질문을 받았을 때와는 다른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꿈이 무엇일까? 무엇이 되고 싶을까?’ 막상 생각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10년을 넘게 꿈 없이 지내오다 보니 꿈을 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노트를 펼쳐서 적어 보았다. 몇 개가 쌓인 후에는 우선순위도 정해보았다. 행복한 사람 되기, 동화작가 되기, 우수직원상 받기, 강연하기, 축구 심판되기... 나도 꿈이 있었다! 그것도 꽤나 많이! 다만 남들이 하는 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현실에 안주하다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침내 어른도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시작하여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습관처럼 게임을 하고 만화를 보는 대신에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처음 한 줄을 쓰는 것이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이제는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그렇다고 잘 쓰지는 못한다!). 아직 어설픈 실력이지만 아내와 함께 동화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그리고 더 기쁜 소식은 아내 역시 그림 작가가 되려는 꿈을 가졌다는 것이다! 꿈의 전염성은 코로나 19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우리 부부는 습관만 변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게 되었다.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니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꿈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마구 샘솟고 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 자신을 더 소중히 대하고 있다. 이전에 나는 꿈을 꾸기에는 미숙하고 무기력한 존재라고만 생각했었다. 번번이 좌절하게 만드는 거대한 벽 앞에 한 없이 작은 존재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이 만든 벽이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겁 많고 나약한 내가 스스로 꿈을 포기하기 위한 수단이자 핑곗거리에 불과했다(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혹은 평생 노력해도 꿈에 다다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꿈을 꾸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아이는 어른을 보며 꿈을 꾼다.”
“어른도 아이를 보며 꿈을 꾼다.”
나는 오늘도 아이와 함께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