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수 있는 게 늘어간다.
육아휴직을 했을 때 아내님은 나에게 한 달간 자유시간을 주었다. 어떤 일을 해도 좋으니 원하는 걸 실컷 하라고 했다. 한 달은 너무 길고 딱 일주일만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혼자 여행을 다닐까, 친구들을 만날까, 아니면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잘까? 어떤 것을 해도 좋을 거 같았다. 하지만 이 중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실컷 읽는 것이었고, 약속한 일주일을 넘게 책에만 파묻혀 있었다.
어릴 때 가난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가난을 물려받은 아버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는 무렵부터는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지만 그전까지는 소시지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 흔한 장난감은커녕 제대로 된 그림책 한 권 없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퇴근하는 길에 거리에서 중고로 책을 파는 사람으로부터 책 2권을 사 오셨다. 물론 형에게 사준 것이었고,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천자문과 고사성어에 관한 책이었다. 당연히 형은 책을 멀리했기에 고스란히 나에게 넘겨졌다. 약간 만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내용은 어려웠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7살 때쯤인데 3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기억나는 내용이 많다. 어쩌면 그 책들 덕분에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유난히 책을 좋아한다. 한글을 잘 읽을 수 있게 된 이후부터는 책을 달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본다. 그 영향 덕분인지 둘째도 가끔씩 책을 읽는다. 첫째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면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기특하면서도 고맙다.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늘어나기 때문에 더 즐겁다.
언젠가 둘째도 한글을 떼면 스스로 책을 읽는 날이 올 거다. 그러면 그때는 아이들과 같은 책을 읽고 독서 토른을 하고 싶다. 토론이라고 해서 어려운 게 아니라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또 언젠가는 아이들과 함께 글도 쓰고 싶다. 억지로 쓰는 일기 숙제 말고,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거다. 수필이 될 수도 있고, 동시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소설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상상하는 그 어떤 것도 방해받지 않는 글을 함께 쓰고 싶다. 날이 맑은 날에는 맑은 대로,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그 감성이 취해 마구 쓰는 글도 좋고, 각 분위기에 맞는 책을 펴도 좋을 거 같다. 어찌되었 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좋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빠르게 성장하는 게 아쉬울 때가 많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게 늘어날수록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오늘도 아이들 모습을 두 눈 가득 담는다. 내 아이들도 태어나 주어서 더없이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