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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팥쥐아재 Dec 20. 2024

배려와 배신이 난무하는 형제들

둘째와 쿠키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린이집을 다녔고, 둘째는 이사를 오는 바람에 4개월 정도 유치원을 다녔다. 이사 온 동네에는 아이들이 4세까지만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고, 5세부터는 유치원을 가야 한다는 이상한(?) 규칙이 있다. 왜 그런지 정확히 이해되지 않지만 지역마다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는 기준이 다른 거 같다. 이제 며칠 후면 셋째는 다섯살이 된다.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을 졸업해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가 다닐 유치원은 다행히 형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부설유치원이다. 어제 사전설명회가 있어 아내님과 함께 다녀왔다. 원장선생님과 세 분의 학년 담임 선생님이 계셨는데 모두 인상도 좋으시고 아이들을 잘 가르치실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준비해 둔 쿠키가 남는다며 하나를 더 챙겨 주셨다. 이걸 받으면서 고맙긴 했는데 아이가 셋이라 쿠키 두 상자를 어떻게 나눠줘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셋째는 어린이집을 마치고 친구들과 키즈카페에 가기로 했다. 아내님은 거기서 셋째 간식을 챙겨 먹일테니 첫째와 둘째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돌아와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예상대로 첫째는 배고프다며 자신의 쿠키를 낼름 먹어치웠다. 반면 둘째는 "동생 쿠키는 어디있어?"하고 묻는다. 예쁜 녀석...❤ 셋째는 키카에서 엄마가 간식을 챙겨줄 거라고, 너 혼자 다 먹어도 된다고 답해주었다. 그럼에도 둘째는 셋째가 오면 나눠 먹을 거라며 먹고 싶은 마음은 꾹꾹 눌러담았다. 기특한 녀석❤ 둘째를 안아주며 첫째에게 눈총을 쏘았는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저...저...하아... 그래. 한창 자랄 때니 많이 먹어라!


한참을 놀다온 셋째가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님 말에 따르면 얘는 놀러 간 건지 먹으러 간 건지 모를 정도로 수시로 아줌마 사이를 오가며 간식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와 발견한 쿠키가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셨다. 둘째에게 셋째랑 쿠키를 나눠먹으라고 했더니 깨끗히 씻고 밥 먼저 먹고 쿠키를 먹겠다고 했다. 첫째와 셋째와 달리 나눠주고 배려하는 걸 잘하는 둘째가 예뻐 궁디 몇 번 팡팡 해주고 꼭 안아주었다.


삼형제가 씻으러 들어간 뒤 잠시 자유시간을 즐기려는데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둘째가 만든 레고를 셋째가 실수로 부러뜨린 것이었다. 둘째를 달래며 실수로 그런거니 이해하라고 했지만, 셋째가 사과를 하지 않는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더니 쿠키를 나눠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청천벽력 같은 말에 셋째는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사과를 하라며 소리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약속을 지키라며 울먹인다. 중간에 끼여있으니 머리가 아팠다. 


예쁜 녀석 취소! 기특한 녀석 취소! 이럴 거면 셋째가 오기 전에 다 먹어치우지 그랬어!

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심호흡과 함께 꿀꺽 삼켰다. 아이들은 망각의 짐승들. 어루고 달래면 금세 또 잘 놀 게 뻔하다. 역시나 둘을 화해시키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꽁냥꽁냥 잘 놀았다. 반찬 투정을 하는 셋째에게 "골구로 잘 안 먹으면 쿠키 안 준다."고 협박을 날려주는 둘째 덕분에 저녁 식사 시간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참 이럴 때 보면 또 예뻐 보인단 말이지. 희노애락이 순식간에 변하는 아이들은 정말 신기한 존재다.


저녁을 먹고 나서 둘째는 셋째에게 쿠키를 나눠 주었다. 쿠키박스에 든 쿠키는 총 5개, 3개는 둘째가 먹고 2개를 셋째에게 나눠 주었다. 셋째는 "나도 3개 먹고 싶은데 왜 2개 밖에 안 주냐."며 찡찡 거리기 시작했다. 아오, 진짜!!! 나눠주도 불만인 너를 어찌하오리까!!! 너는 키카에서 간식도 많이 먹고 왔다며!!! 그러거나 말 거나 둘째는 신의 쿠키를 먹고 나서 자리를 뜬다. 그의 뒷모습에서 다시는 간식을 나눠주지 않겠다는 비장함을 느꼈다.




그래 놓고 다음에 또 나눠 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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