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뭐지? 뭘까?
어제 첫째와 [투명인간이 되고 말 거야!"]라는 책을 읽고 독서기록장 쓰는 걸 함께 했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글쓰기'라고 했던 첫째는 어느새 글쓰기에 익숙한 어린이가 되었다. 혼자서 줄거리 요약도 잘하고 느낀점을 정리하는 게 많이 늘었다. 옆에서 살짝 거들어주기만 해도 혼자서 거뜬하게 쓰기 때문에 딱히 손봐줄 것도 없어 보인다. 물론 아직 초등학생 저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꾸준한 글쓰기로 내년 쯤엔 나와 비슷한 수준까지 도달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조금 깊이 있는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거 같다.
첫째가 투명인간이 되면 하고 싶은 건 '투명인간인 상태로 가족과 대화하기'와 '친구들 놀래켜 주기' 같은 소박한 일이었다. 아이다운 순수함이 느껴진다. 투명인간이 되면 생물채집 하는데 유리하지 않겠냐고 물으니 "생물들은 후각과 청각이 매우 발달해 있어서 보이지 않아도 잘 도망갈 거 같다."며 딱 잘라 말했다. 인정 없는 녀석...... 객관적 사실과 상상력을 조합해서 글쓰는 방법은 조금 가르쳐야겠다. 어쨌든 글쓰기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는 아이라 많이 들어주고 알려주었다.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무엇', '왜', '어떻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면 좋다고 알려주었다. 특히 '왜(why)'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에게 공부를 왜 해야 할까? 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학생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빠는 학생이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첫째가 하고 싶어하는 생물과학, 과학 유튜버, 생물채집과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는 더 많은 기회를 주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좋을 거 같다고 답해주었다. 엄마랑 아빠도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동안 아이는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치 내 눈을 통해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첫째는 말을 시작할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이건 뭐야? 뭐지? 뭘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쉴 새 없이 묻는 아이에게 지칠 때도 있었지만 아이가 질문을 할 때마다 좋았다. 아이에게 바른 대답을 해주기 위해 나 역시 정확히 공부해야 했고, 깊이 생각해야 했고, 몇 번이고 같은 질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첫째를 보면서 '이 아이는 전생에 내 성장을 이끌어주는 스승은 아니었을까?'하는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여하튼 10살이 된 첫째는 아직도 호기심이 많다. 예전만큼 나에게 묻는 것보다는 스스로 책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알아가는 게 많아 아쉬울 때 있지만, 가끔씩 무언가를 묻고 답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특히 글쓰기를 할 때는 아직까지 내가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 고맙게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왜' 글을 쓸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하나 추가되었다. 글을 통해 내 내면을 진솔하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고, 더불어 글쓰기는 아이와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첫째에게 글쓰기가 더이상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아니게 되는 날,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가 즐겁게 글 쓸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도와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