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꿈을 응원합니다.
아내는 꿈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는 데로 취업이 잘되는 대학을 선택했고, 마찬가지로 취업이 잘 되는 과를 선택해서 졸업했다. 중간에 적성에 안 맞는다며 전과를 하거나 아예 학교를 옮기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본인에게는 머나먼 이야기였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한순간 그녀의 진짜 꿈이 비집고 나올 것 같았으나 삐져나온 주머니를 정리하듯 꾸역꾸역 욱여넣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다. 박봉임에도 취업이라는 작은 꿈은 실현되었기에 열심히 일했고 누구나 인정하는 우수 직원이 되었다. 꼼꼼하고 깔끔한 일처리와 모난 곳 없는 성격에 대인관계 역시 좋았고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승진이 빨랐지만 누구 하나 눈엣가시처럼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겼고 남편은 그녀에게 일을 그만둘 것을 요청했다. 아니, 사실은 요청이 아니라 강요였을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수입이 더 많은 사람이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앞에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최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아니 야근이 일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으면서도 밑바닥부터 착실히 다져온 자리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7년간의 시간이 현실적인 벽 앞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많이 아쉽고 허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았다.
전업주부로 지내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라던 남편은 오히려 자신보다 모아 놓은 돈이 적었다. 그나마 들고 있던 적금도 부모님 드릴 거, 조카 줄 거라며 빼놓는 남편이 야속했을 거다. 경제적 여건도 그렇지만 자신의 능력을 그냥 썩히기는 너무나 아까웠다. 다행히 전에 다니던 직장과 협업을 했던 곳에서 꾸준히 일감을 주었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둘째가 생기고, 셋째가 생기는 순간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이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입덧이 심해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할 때도,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잠이 부족할 때에도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꾸역꾸역 일을 해냈다.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며 미련하다고 했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자신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정확히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동화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도 꿈이 뭐냐고 물었다. 취업이 잘되는 학교에 다니는 꿈 말고,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되는 회사에서 일하는 꿈 말고,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는 프리랜서라는 꿈 말고,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이 뭐냐고 물었다. '내 꿈......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내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학업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미술만큼은 상위권이었고 국내에서 제일이라는 학교에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실력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붓 대신 딱딱한 디지털 펜을 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그림과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자신의 진짜 꿈을 꼭꼭 숨긴 채 현실에서 요구하는 작은 꿈으로 포장된 삶을 살고 있었다. 내 꿈을 찾았을 때 아내의 꿈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내의 진짜 꿈을 함께 생각해 보았다.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어 넣었던 그 꿈을, 이제는 꺼내도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다시 그림을 배우고 싶어."
아내는 그림을 그린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지만, 더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하나씩 쌓여가는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더 기쁘고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가끔 미안하다. 조금 더 빨리 찾아주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든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아내의 꿈을 찾아줄 수 있어서 기쁘다.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힐 때마다 '괜찮아? 어때? 조금 튀나?'라며 순수하고 생기발랄하게 물어오는 아내가 그저 사랑스럽게 보인다. 아내가 새로 가진 꿈, 그림동화작가라는 꿈과 세계일주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데 언제나 함께하고 싶다.
꿈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이전에 미처 몰랐다. 아내와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이자 기쁨임을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분께서 이미 자신의 꿈을 찾았다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꿈도 함께 찾아보았으면 한다. 나를 위해, 혹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마음 속 깊이 눌러 담은 꿈을 다시 찾아낸다면 더없이 큰 기쁨이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