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끼니를 거르는 아이가 있다?

따뜻한 온정이 전해지기를

by 팥쥐아재

넉넉지 않은 집에서 자랐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월급날 사 오시는 시장표 통닭이 육류를 섭취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마저도 살이 넉넉한 다리는 아버지와 형의 차지였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살점이 많지 않은 날개와 목이었다. 발라먹는 모양새가 빠지고 투입 대비 성과가 좋은 부분은 아니었지만 구석구석 발라먹으면서 육질을 음미했다. 아마 목 부분을 가장 깨끗하게 먹는 대회가 있다면 내가 우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쪽쪽 빨아먹었다. 닭 성장을 위해 호르몬 주사를 목으로 주입하는데 좋지 않은 성분이 남아있기 때문에 목만큼은 절대 먹지 못하게 하는 아내님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통닭의 목을 쪽쪽 빨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니를 거르거나 배를 곪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요리라면 5성급 호텔 주방장도 한 수 접고 들어올 정도로 잘하시는 어머니 덕분에 반찬투정 한 번 없이 잘 먹었다. 남들은 엄마표 곰국을 며칠 동안 먹으면 질린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소금, 후추, 파 혹은 김치의 종류에 따라서도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곰국이 질린다니! 배부른 소리가 따로 없다.


아버지는 습관적으로 말씀하셨다. 아직도 못 먹고 굶는 아이가 넘쳐나는데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놀라운 발전과 경제성장으로 GDP 3만 불 시대에 굶는 아이가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무리 주변을 돌아보아도 굶기는커녕 넘쳐나는 음식물로 비만에 걸리거나 성인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 했다. 어느 식당을 가도 남기는 음식이 태반이고 어느 집 냉장고를 열어도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꽉 차있다. 어릴 때는 겨우 한 달에 한 번 먹을 수 있던 통닭 역시 1일 1 닭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흔한 음식이 된 지 꽤 오래다.


공사판에서 하루 뛰기 잡부로 일해도 수중에 떨어지는 돈이 10만 원이다. 많이 주는 곳은 12만 원도 받는다. 그 돈이면 끼니를 거를 걱정이 없다. 술판과 노름판으로 매일같이 탕진하지 않는 이상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도 남을만한 돈이다(심지어 우리 현장에서 용역을 하시는 분은 나보다 훨씬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차가 곧 부의 기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무슨 일을 해도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는 좋은 사회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믿었다. 정말 그렇게 착각 속에 살았다.


여느 날처럼 유튜브에서 명상 채널을 플레이하고 기다리는 동안 흘러나오는 광고를 보았다. 평소 같으면 5초가 지나기 전부터 광고 넘기기를 클릭하려고 기다렸을 테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한창 빛나고 생기 넘쳐야 할 화면 속 어린아이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병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녀는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 통학이 금지되었고 자연스레 급식도 중단되었다. 지원센터마저 문을 닫자 끼니를 해결할 곳을 잃었다. 건물의 철문처럼 아이의 입은 굳게 닫혔고, 마음은 더 단단하게 닫혀버렸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굶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내 질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굳게 닫아버린 나만의 착각이었다.


슬펐다. 아주 많이. 누군가는 넘쳐나는 음식으로 포만감에 괴로워할 때 어린아이들은 배고픔과 추위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타인의 게으름과 능력 부족을 핑계 삼아 비난하기만 했을 뿐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한 달에 2만 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소녀와 할머니에게 따뜻한 한 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원을 시작했다. 이 역시 불편한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자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씁쓸할지라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의 통닭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후원금이 전달되기를 기다려 본다. 아이와 할머니에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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