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대하는 아빠의 자세

또 하고 싶다, 눈싸움

by 팥쥐아재

요란하게 내리는 여름 장맛비와는 다르게 올해 첫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아니, 1월에 이미 내린 눈이 시기상으로는 첫눈이려나? 뭐 어쨌든 상관없다. 창문 밖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으니까. 사람이 된 후 이성이라는 것이 조금 생긴 후 처음 보는 눈을 주야장천 '비'라고 말하는 둘째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첫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을 때는 염화칼슘으로 인해 어느 정도 눈이 정리된 후였다. 그러나 잔뜩 쌓인 눈을 기대했던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어디든 온전히 쌓여있는 눈을 찾아야 했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내 차 '치키'였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경비아저씨라도 자동차 위의 눈까지는 치우지 않았기에 다행히 치키 위에는 눈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대로 얼어버리면 내일 새벽 출근길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눈싸움을 핑계로 걷어내기 시작했다.


첫째가 빗자루를 들고 의욕적으로 덤벼든다. 키가 닿지 않는 지붕까지 눈을 털고 싶다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보닛에 올려주었다. 몇 번 비질을 하던 아이는 그만 꼬꾸라지고 말았다. 한 번 크게 기겁을 하고는 둘째에게 빗자루를 넘겨주었다. 둘째는 몇 번 비질을 하더니 곧 흥미를 잃고 나에게 다시 넘겨주었다. 차에서 떨어진 눈을 뭉치며 노는 아이들에게 어떤 서프라이즈를 해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지붕 위에 잔뜩 쌓인 눈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빗자루로 조심조심 한 곳으로 모은 다음, 하나, 둘, 셋! 아이들 머리 위로 투척했다. 혼비백산한 아이들은 한참을 호들갑 떨더니 조그마한 눈 뭉치를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장갑도 없고 손이 시릴 거 같아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아이들이 던지는 눈 뭉치가 나를 맞출 확률은 기상예보가 날씨 맞추는 확률과 비슷할 테니 말이다. 요리조리 아이들의 눈 뭉치를 얄밉게 피하자 첫째가 뿌루퉁해졌다. 이제 그만 재주 부리는 원숭이 역을 그만두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손을 탁탁 털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요 녀석이 꾀를 부리네. 네가 그래 봤자 부처님 손에 손오공이지.'


아이는 필시 지척으로 다가와 눈 뭉치를 던질 것이다. 그래야 그나마 아빠를 맞출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눈을 피하고 아이를 더 약 올릴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 맞아주고 아이의 기분을 풀어줄지. 이것 역시 사실 의미 없는 고민이었다. 어차피 눈 내리는 날 아이들과 밖으로 나온 아빠의 말로는 정해져 있으니까. 자신이 던진 눈덩이를 맞고 오버하는 아빠를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그냥 둘 수 없어 주머니에서 손을 뽑아 들었다. 마치 생사의 결전을 치르는 카우보이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눈밭 위에 손을 올렸다. 뼛속까지 시리도록 차갑다. 그러나 뽑을 총을 그냥 총집에 넣을 수는 없어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뭉쳤다. 아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눈 뭉치를. 기겁을 하며 도망가는 아이들에게 눈덩이를 난사하며 달리다 보니 제법 재미있었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히는 땀, 차가운 아침 공기가 폐 속 가득 차오르는 느낌, 거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모처럼 느끼는 기분 좋은 상쾌함이었다.


맞은 눈이 녹으면서 아이들이 옷이 젖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 한참 후였다.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히는데 둘째가 기침을 콜록거렸다. 혹시나 아내님이 그 소리를 들었을까 봐 온신경이 곤두섰다. 엄마 몰래 뽀로로 비타민을 꺼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으면서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는 둘째의 심정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내의 등짝 스매싱이 이미 지나간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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