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그림이 좋다

사실 아내가 더 좋다

by 팥쥐아재

그림동화작가에 등단하기 위해서는 창작 그림 50점이 필요하다. 오롯이 정성을 퍼부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그림 1점. 아내는 이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해 일주일에 2번, 만삭인 몸을 이끌고 학원으로 향한다.


이전엔 몰랐다. 그림 1점을 그리기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리라고는. 이미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니 그냥 앉은자리에서도 그림 몇 점은 쓱쓱 그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창작의 고통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일이었다. 내 경우, 일필휘지로 글이 잘 써지는 날보다 잘 써지지 않는 날이 훨씬 많다. 나름 글쓰기를 좋아하고 제법 쓴다는 축에 속하지만 글 하나를 올리기 위해 몇 번이나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글은 썼다 지우고 수정하기가 수월하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색을 잘못 칠하기라도 하면 그대로 끝이다. 덧칠에도 한계가 있어 말 그대로 망한 그림이 된다(물론 내가 보기에는 완벽한 그림이지만 정작 그림을 그리는 사람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그림 하나를 그릴 때에도 많은 고민과 내적 갈등,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의 경우 한 달에 하나 정도 그림을 완성하는데, 집에서는 도저히 그림을 그릴 상황이 되지 않는다. 천방지축 사내아이 둘이서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엄마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는다. 혹시라도 물통을 엎는다던가 색칠하고 있는 아내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아내의 샤우팅이 셋째 태교가 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몸이 무거워져 오랫동안 앉아있기가 힘들기 때문에 한 시간을 집중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아내 모습에 많이 배우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오늘 그림 1점을 완성했다며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연락을 했다. 받아 든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미술에 절대적으로 소질이 없는 나도 이제는 제법 그림을 볼 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림을 넘어 무언가가 보인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말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그런 감정이 든다. 아마 앞으로도 아내가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그 속에 담긴 무언가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내 그림은 아주 순수하고 따뜻하며 명량하다. 볼수록 좋은 감정이 가득 채워지기 때문에 더 가까이 두고 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나는 아내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그림을 그리는 아내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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