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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피아 Oct 21. 2021

우표, 닿고 싶은 곳들

작은 사각형으로 상상하기

이따금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해외에 살아서 자주 볼 수 없는 친척, 전학을 간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우표는 내 편지를 가장 쉽고 빠르게 전해줬다. 슈퍼, 문구점 등에서 우표를 살 수 있었다. 집 앞에서 우표를 사서 우체통에 넣었다. 친구집에 다녀오던 길, 우연히 우체국 앞을 지났다. 그 앞에는 ‘1994년 세계 우표 전시회’의 기념 우표를 판매한다는 포스터를 우연히 보게 됐다. 몇 마리의 학이 날아다니는 우표 그림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슈퍼에서 샀던 우표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생필품처럼 생각했던 우표가 예술 작품의 영역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틀 후, 그것을 사기 위해 우체국을 다시 찾았다. 낱장뿐 아니라, 휴대용 우표첩의 형태로도 판매되고 있었다. 가격은 한 장당 130원이었다. 10장으로 구성된 우표첩을 구매했다. 9살, 내 일주일 용돈은 2000원 이었고, 용돈의 절반 이상을 써버렸다. 그 주에는 군것질을 줄여야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우표첩을 자주 들여다보며 즐거워했다. 그 때부터 우표를 모았다. 집에서 먼 거리에 있던 우체국 앞을 지나며 기념우표 출시일을 기다렸다.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정보를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집 앞 문구점에서도 기념우표를 판다는 것을 알았다.


“아저씨 저 우표 좀 보여주세요!”


대전 중구 선화동

신세계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발간된 우표부터 최근의 우표까지 한데 모여 있었다. 우표 상단에 써있는 가격과 판매가는 달랐다. 기념우표가 갖는 희소성 때문일 것이다. 아저씨는 과거 우표들을 500원, 1000원, 2000원 등의 가격으로 분류해 놨다. 명절에 친척들부터 받은 돈을 쓰지 않고 모았던 것을 요긴하게 썼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 기념(1984), 한국 미술 5천 년 전(1980), 제29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1982) 등은 내가 수집한 것 중에서 고가 우표에 속했다. 한 장당 2000원이 넘어서 살 때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다. 참새가 방앗간에 들리는 것처럼 매일 문구점을 찾아서 기념 우표를 구경했다. 보통 이십 분 넘게 우표를 살폈다. 


아버지를 졸라 몰래 돈을 받아서 우표를 살 수 있는 날도 있었지만, 구경만 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다. 아저씨는 작은 비닐에 우표를 넣어줬다. 사는 날보다 사지 않는 날이 많았지만, 늘 친절하게 선반에 있는 우표 앨범을 꺼내서 보여 주셨다. 문구점은 두 사람이 동시에 드나들기 불편할 정도의 빠듯한 크기였다. 천정까지 물건들이 쌓여 있었고, 2평 남짓 되었다. 문구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우표 앨범을 열심히 살폈다. 아저씨는 그런 내게 아무 말 없이 우표 앨범을 꺼내 주셨다.


우표앨범을 살피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것 같았다. 아홉 살 때까지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유명 인사 해외의 관광지들은 텔레비전, 책을 통해 이따금 접할 뿐이었다. 서울을 가 본 것도 두 번뿐이었다. 드라마 속의 배경이기도 한 그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이 우표 속에 있었다. 검지손가락 한마디 크기 우표는 세상에서 가장 핫한 소식들을 내게 알려줬다. 우체국 앞에 붙은 포스터를 보면 국내외 기념일, 행사, 사건의 소식을 팔로우업 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였지만, 뉴스로 알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꼭 우체국 앞의 포스터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고, 그런 행위에 대한 뿌듯함 같은 게 있었다.   


고향집에서 추억의 우표 앨범을 발견하고 한참동안 그것을 들여다봤다. 우표를 한 장씩 구입할 때의 설렘이 떠올랐다. 우표 속에 기록된 기념일, 행사의 날짜는 역사의 기록이기도 했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기념우표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과거 인물,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얻을 수 있는 요즘의 시대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기념 우표와 함께 종종 산 것은 ‘크리스마스 씰’이다. 매년 대한결핵협회에서 발행하는 ‘씰’은 우표의 형태지

만, 사용 가치는 없었다. 액면가가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씰’은 1904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최초로 발행되었다. 결핵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했던 유럽에서 결핵 퇴치 사업을 위해 시작한 것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32년, 캐나다 선교사 ‘셔우드홀’에 의해 최초로 발행 되었다.


대전 동구 송총남로 11번길 116, 대전문학관 

“씰 구매할 사람 손 들어봐요.”


연말이 되면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그 때 손을 들면 남을 도울 줄 아는 착한 사람이 된 듯 했다. 선행을 베푼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기념 우표는 소유하는 만족감이 있지만, 씰은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나눈다는 행복감이 있었다. 씰은 낱장으로 판매하지 않았고, 열 두 장이 합쳐진 한 장의 형태였다. 눈금이 있어서 한 장씩 찢어 쓸 수 있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 디자인, 식물 등 해마다 디자인도 다양했다. 스티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연말에 친구들에게 편지를 붙일 때, 우표 옆에 씰을 한 장씩 붙였다. 나 역시 씰이 붙은 편지를 받는 일이 있었다. 씰이 붙은 편지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 봉투의 겉면을 들여다보다가 도장이 찍혀 사용가치가 없어진 우표와 씰을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그것들도 나의 우표첩에 끼워 넣었다. 기념우표 못지않은 근사함을 느꼈다. 고가이며 특별하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 기념우표는 제 기능을 해보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우표첩에서 낡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 문구점 등의 다양한 곳에서 판매하는 평범한 우표는 활발하게 제 기능을 한다. 그것 나름의 기능이 있는 것이다. 희소성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 때부터 기념우표를 수집하는 일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사용 가치가 없는 우표에도 집중했다. 나에게 온 편지의 우표만 떼어 따로 보관했다. ‘나에게 온 소중한 우표들’이라고 우표첩에 유성 매직으로 제목도 써 놨다.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들은 분실된 것들이 많지만, 그 우표들은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각기 다른 사람의 손때가 묻은 그 우표를 누가 준 것인지를 기록하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쉽다. 재밌는 점은 남아있는 우표의 표면 모양이 제각각인 것이다. 우표 위에 찍힌 스탬프의 모양이 모두 달라서다.


요즘엔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우표 가치를 감정하고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컬렉터 집단만 존재할 뿐이다. 이메일, SNS로 연락을 주고받는 게 일반적이라 우표를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게 중요한 요인인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일도 드물다. 우표 자체를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세대도 존재할 것 같다.

대학교 때, 사이가 소원해진 이성에게 내가 아끼던 기념 우표와 씰을 붙인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미안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에 그만한 방식이 없는 것 같았다. 한여름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씰도 함께 붙였다.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역로 30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아꼈던 기념 우표야.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너인 것처럼.”


우표를 붙인 후, 상대방과 다시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희소성있는 기념우표라는 매개체를 통해 잘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표를 더 이상 모으지 않게 된 것은 핸드폰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였다. 삐삐와 달리 누군가에게 즉시 연락을 할 수 있는 핸드폰이 생겼을 무렵, 이메일로 편지를 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학교에서 편지를 써서 친구들과 교환하는 일이 잦았지만, 우표를 붙인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일 자체가 점점 낯설어졌다. 그 무렵, 기념 우표가 출시되던 빈도도 줄었다. 학업이 바빠지고, 고등학생이 되며 우표를 사러 가는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나의 우표첩의 시간이 멈췄다. 어느 날, 동묘 시장에서 우표를 파는 것을 보았다. 낱장이 아니라, 누군가 시간과 공을 들여 수집한 우표첩이었다. 그것들을 구경했다. 우표에 대한 정성과 애정의 보고이기도 한 그것이 매우 귀중하게 느껴졌다. 어떤 이유로 판매의 대상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시장을 내놔야 했던 사람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물건이 탐나기도 했지만, 어마어마한 가격 때문에 가져올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나의 우표첩의 태엽을 돌려보면 어떨까.’


90년대 초반, 홈페이지 자체가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에서도 기념우표를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판매 기간이 지났어도 재고가 있는 것들을 검색해서 살 수도 있다. 인터넷 상에서 애호가들 사이에 거래도 활발하다. 그때보다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고민 없이 더 많은 우표를 살 수 있는 여력도 있다. 우표가 사람들에게서 어색하게 끝난 사물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표가 그립다. 다시 우표를 모으고 싶어진다.  




<종이 일기>     


과거에는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겼지만, 현재를 살면서 잊게 된 사물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우표가 그랬습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우표의 쓰임이 적어졌고, 그것들을 접할 일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모았던 우표들을 본 순간 다시 설레임을 느꼈습니다. 세상이 변해서 우표 수집을 멈춘 게 아니라, 제 마음이 그렇게 된 것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념 우표를 사는 일이 더욱 손쉬워졌으며, 그것이 갖는 ‘희귀성’은 더 커졌습니다.      


누군가로부터 기념우표를 붙어있는 손편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떨까요? 


분명 이메일로 받은 편지와 다른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메일의 편지함의 삭제 버튼을 누르기는  쉽지만, 그 편지들을 버리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생애에 몇 번 일어나지 않을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그 기념 우표들을 모아보려고 합니다. 아홉 살, 우표를 처음 수집할 때 같은 설렘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우표첩에 간직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그 우표로 내 마음을 전해보고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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