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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Sep 22. 2020

두터워지고 동시성이 강화된 현재의 의미

영화 <테넷, TENET> 후기 (2020)

두터워지고 동시성이 강화된 현재의 의미

영화 <테넷> 표면적인 주제는 환경이다. 바다와 강물이 말라 가는 극단적인 환경위기에 빠진 미래세대가 시간 역행 기술을 개발해, 환경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판단한 그들의 과거 세대  현재의 우리를 말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테넷> 미래와 그들의 과거  현재의 전쟁에 관한 영화이다.

하지만 이처럼 거대한 문제보다는  영화 속의 시간개념이 나의 눈길을 끈다. 영화가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인버전이라는 시간역행 방식, ‘할아버지의 역설’, ‘시간을 이용한 협공작전등에 대한 초기의 관심은  희미해지고,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시간개념에 몰입하면서 결국 N 관람까지 이어졌다.


영화 <테넷>의 시간론


시간은 공간과 함께 모든 인간 경험의 토대이다. 17세기 뉴턴 이후 시간은 오직 한 가지뿐으로 복수성이 배제되었고, 일률적으로 흐르며 시간축 어느 지점에서나 동등한 부분으로 분할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균질적이며 원자적이며 불가역적인 시간, 즉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공적 시간론이 19세기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1931년 그려진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은 시간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근대 유럽 문화사와 지성사 연구자인 스티븐 컨 박사는 저서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에서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1931, 뉴욕현대미술관 / 구글이미지>

그림 속의 녹아내리는 듯한 세 개의 회중시계 중 나무에 걸린 시계는 사건이 기억 속에서 지속될 수 있음을, 파리가 앉아 있는 시계는 기억의 대상이란 녹아내리면서 부패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잡종 애벌레 같은 생물체에 널브러져 있는 시계는, 생활이 기계적 시간의 기하학적 형태와 수학적 정확성을 왜곡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마지막 네 번째 시계는 녹아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개미들이 마치 우리 인생의 시간을 갉아먹을 기세로 달려들어 시계를 먹어치우려 하는 것 같다.


이전까지 뉴턴이 제시했던 “절대적이고 참되고 수학적인 시간, 자연히 그리고 본성상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없이 동등하게 흐르는 시간”은 해체되고 불분명하게 되었으며 분탕질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강력한 통일성이 부여되었던 단일하고 보편적인 공적 시간은 20세기가 되면서 사적 시간에게 지위를 넘기고 현실성을 잃어버렸다.

영화 <테넷>은 이같은 20세기의 시간개념, 즉 비균질적이며 유동적이고 가역적인 사적 시간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주인공은 가역적인 시간 속의 많은 사물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사물과 사람들은 각각의 개별적인 시간 흐름 속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서로 교차하면서, 각자의 사적인 현재 시간을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한 시간 후의 미래로부터 한 시간 전의 과거인 현재로 인버전 되어 온 사람과 과거로부터 흘러 동일한 현재에 도착한 사람, 이들은 모두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특정한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모두 현재라는 시간에 동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현재라는 시간이 몹시 두터워졌으며 동시성이 강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테넷>에서 두터워진 현재, 동시성이 강화된 현재는 무슨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 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영화 속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군요!” 사건이 진행되면서 누군가 주인공에게 한 말이다.  


클리셰(cliché), 하지만 중요한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차단당한 상태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과거에 고착된다든가, 현재 속에 고립된다든가, 미래에 대한 전망이 결여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오직 미래를 향해서만 돌진하거나.

영화에서  또다른 주인공 캣은 현재 속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의 현재가 붕괴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미래는 차단되어 있다고 느끼며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감각에 지배당한 상태이다. 하지만 인버전을 통해, 과거의 자신이 부러워했던 여자가, 자신을 학대하는 남편의 요트에서 자유롭게 바다로 날아가듯 뛰어든 바로 그 여자가, 사실은 현재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고 고립에서 벗어나는 과감성과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주인공도 동시성이 강화된 자신의 현재 속에서 능동적인 방식으로 미래로 향하게 된다. 영화 초반부 압도적인 환경 속에서 다가오는 미래에 위축되었던 주인공은, 점차 사건들을 통제하면서 미래를 향하며 현재의 환경 속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이런 대사를 남긴다. “내가 주도하는 사람이다.”


능동적인 방식으로 미래를 향하며 자신의 현재에 집중하는 것!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생각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 선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특히 그러하다. 치명적인 대기오염 상태의 지구를 떠나 웜홀을 통해 암흑의 우주 속으로 행성 탐사에 나서고, 블랙홀을 통과하면서 알게 된 중력방정식에 관한 정보를 시간을 거슬러 어린 딸에게 전달한 후, 미래의 인류 정착지에서 인류의 구원자이며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버린 딸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의 삶의 동료이며 동반자인 아멜리아 브랜드 박사를 만나기 위해 다시 우주로 나선다.


두터워진 현재에서 미래를 경험하는 방식


스티븐 컨 박사는, 인간이 미래를 특히 근접한 미래를 경험하는 두 가지 방식은 능동성(activity)과 예기(expectation)이며, ‘시간 속에서 주체가 어떤 방향을 취하느냐’가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라고 설명한다.


능동성 방식은 개인이 미래로 향하며, 여전히 불확실성을 안고 있지만 통제 가능한 변수들을 최대한 관리하며 세상 속으로 돌진해 나가는 것이다. 마치 <테넷>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주인공과 <인터스텔라>의 쿠퍼 선장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위축감 속에서도 능동적인 통제 감각을 유지하면서 미래를 받아들이고, 현재의 환경 속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현재에 집중한다.


반면 예기 방식은 미래가 개인에게 다가오며 개인은 위축된다. 마치 <테넷>의 인버전하기 전 캣처럼 고립되어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스티브 컨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기다리면서 보낸 시간은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지 못한다’ 고 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늙어갈 뿐이다.


현실 속의 개인은 능동성과 예기 사이 어딘가에서 두 가지가 섞인 방식으로 미래를 대면한다. 하지만 먼저 전화를 걸어라. 전화를 거는 쪽은 능동성이고 전화를 받는 쪽은 예기 방식이다. 그런 능동성을 바탕으로 현재의 통화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까운 미래를 향해 당장 전화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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