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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Oct 22. 2020

飛龍在天 利見大人

승천하는 용이 하늘에 있는 것과 같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飛龍在天 利見大人, 이 문장은 주역(周易) 즉 역경(易經)에 나오는 중천건(重天乾)괘의 다섯 번째 효(爻)에 대한 설명 즉 효사(爻辭)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중천건괘의 괘사(卦辭)와 여섯 개 효에 대한 연속된 풀이, 즉 효사를 알아야 합니다.


주역의 괘는 양효(陽爻, 양(–)을 의미) 혹은 음효(陰爻, 음(--)을 의미)를 단독으로 혹은 혼합해서 여섯 개의 층으로 쌓아 놓은 구조인데, 제일 아래부터 ‘초효, 이효, 삼효, 사효, 오효’라고 하며 제일 위에 있는 여섯 번째 효를 ‘상효’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세 개의 효를 하괘(下卦) 혹은 내괘(內卦)라고 하고, 그 위에 있는 세 개의 효를 상괘(上卦) 혹은 외괘(外卦)라고 합니다.

중천건괘는 주역 64괘의 첫 번째 괘로 여섯 개의 양효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세 개의 양효로 이루어진 하괘와, 역시 세 개의 양효로 이루어진 상괘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역에서는 세 개의 양효로 이루어진 괘상(卦象)을 건삼련(乾三連, 태극기 좌상귀의 문양)이라고 부르는데, 하늘(天, 乾)을 의미하며 父, 머리, 건장함, 임금 등을 상징합니다. 두 개의 하늘이 아래위로 겹쳐진, 그래서 ‘重(거듭 중)’을 사용하여 중천건이라고 부르는 이 괘는, 여섯 효가 모두 양(陽)이어서 순양(純陽)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제 중천건괘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았으니 괘사와 효사를 통해 그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괘사와 효사는 주나라의 문왕과 주공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공자가 십익(十翼)이라는 글을 써서 주역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하고 확대하였다고 합니다. 팔괘(八卦)와 64괘, 괘사와 효사 그리고 십익을 모두 합쳐 주역 혹은 역경이라고 합니다.

乾 元亨利貞 (건 원형이정)

중천건의 괘사입니다. ‘건은 신명과 가장 잘 통하고 점치는 일에 이롭다.’ 혹은 ‘위대하게 성취하니 견고해야 유익하다.’ 혹은 ‘건은 가장 위대하고 형통하고 이롭고 바른 것이다.’ 모두 건의 괘사에 대한 해석입니다. 뒤로 갈수록 성리학의 영향이 큰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음은 여섯 개의 양효에 대한 효사입니다. 참고로 주역에서 양효는 홀수인 九, 음효는 짝수인 六으로 표시합니다. 初九는 초효가 양효라는 뜻입니다.

初九 潛龍 勿用 (초구 잠룡 물용)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구이 현룡재전 이견대인)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 無咎 (군자종일건건 석척약 려 무구)
九四 惑躍在淵 無咎 (구사 혹약재연 무구)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구오 비룡재천 이견대인)
上九 亢龍 有悔 (상구 항룡 유회)
用九 見群龍无首 吉 (용구 견군용무수 길)

초구(초효가 양효라는 뜻); ‘숨어 있는 용이다. 행동하지 말라.’
구이(이효가 양효라는 뜻); 밭에서 용을 본 것과 같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구삼(양삼효); 군자는 종일토록 온 힘을 다하고 밤에도 조심하니 위험이 있더라도 허물은 없다.
구사(양사효); 때때로 물 위로 도약하더라도 여전히 못에 머물러 있으니 허물이 없다.
구오(양오효); 승천하는 용이 하늘에 있는 것과 같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상구(상효가 양효라는 뜻); 용이 매우 높이 나는 것과 같으니 후회를 면치 못한다.
용구(여섯 효가 모두 九 즉 陽일 때); 무리 용들이 (높은 하늘로 올라 꼬리만 보이고) 머리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니 길하다. 혹은 뭇 용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려고 저 혼자 나서는 자가 없으니 좋다.

사실 이외에도 공자가 지은 십익(十翼)에 단사(彖辭)와 상사(象辭)가 있어 중천건을 더욱 자세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오늘은 일단 괘사와 효사의 뜻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천건의 초구에서 상구까지 살펴보면 어느 드라마 제목 ‘육룡이 나르샤’처럼 여섯 용이 나옵니다. 사실 그 드라마 제목도 주역에서 중천건괘를 설명할 때 나오는 ‘시승육룡이어천(時乘六龍以御天)’이라는 문장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초구의 ‘잠룡물용’은 지위가 낮은 용 혹은 陽이 숨어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이의 ‘현룡재전’은 때가 펼쳐지고 있음이며, 구삼은 때에 따라 나아가며 일을 실행함을, 구사의 ‘혹약재연’은 용이 스스로를 시험하며 천도가 변화하기 시작함을, 구오에서 ‘비룡재천’은 陽이 왕성하여 하늘에 머물며 천도로 잘 다스림을 뜻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상구의 ‘항룡유회’는 때와 더불어 다하고 쇠락함입니다.

아주 가볍고 얕은 리뷰이지만, 이처럼 중천건괘는 초구부터 상구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세상 만물 혹은 인생의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주역의 첫 번째 괘인 중천건은 여섯 양효로 이루어진 순양으로, ‘광대하구나, 건(乾)의 위대한 힘이 미치는 범위는!’ 그리고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자강불식(自彊不息)이다’라고 공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원형이정(元亨利貞)한 중천건괘의 마지막 효사가 아이러니하게도 ‘항룡유회’입니다. 그리고 순환하며 열려 있는 구조입니다. 중천건괘가 이럴진대, 뒤이어 나오는 63개의 괘는 세상 만물과 인생의 어떤 복잡다단한 양상을 범주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을지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항룡유회’를 읽으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떠오릅니다. ‘어떤 공리계가 주어졌을 때, 그 공리계 내에서는 참-거짓을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항상 존재한다’는 불완전성 정리. 그리고 그 결정 불가능한 명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공리계를 세워도, 그 새로운 공리계 내에는 또다시 결정 불가능한 명제가 발견된다는, 괴델의 정리가 갖는 또 다른 의미! 이는 어떤 공리계도 혹은 어떤 진리 체계도 완전하지 않으며, 경계가 닫혀있지 않고 열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겸손을 기반으로 자신의 확신과 신념에도 한계점이 있음을 인식하고 유연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인용인지 잘 모르겠지만,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라는 공자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중천건, 重天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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