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의 눈

상담심리학자는 차갑다 ④

by 유기적 시선

심리학자들끼리의 상담


앞서 '심리학자는 차갑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겉으로도 차갑게 보인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자들은 '그럴듯하게' 연기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정식 절차를 갖춘 상담에서는 내담자에게 투사(projection)하지 않으면서 라포(rapport)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비언어적 표현 모두 긍정적이고 편안한 리액션을 제공한다. 이는 직업적인 스킬이고, 상담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런데 심리학자들끼리 하는 '일상의 상담(그냥 고민상담)'은 다르다. 한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보겠다.


내가 선배와 과방에서 과제를 하다가 배가 고파 컵라면을 먹으려고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그 괴짜선배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컵라면 컵뚜껑에 있는 '조리예' 사진대로 컵라면을 먹으려고 매점에서 맥반석 계란을 사가지고 와서 정성스럽게 계란을 반으로 자르고 있었다).

내가 어떤 인간관계 때문에 답답하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의 나는 사회화가 덜 된 T였기 때문에 내가 또 뭔가를 잘못했나 묻고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의문의 감정을 지나 억울한 감정이 들어서 억울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선배는 아무말도 없이 그냥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하길래 내가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없으세요?"


그랬더니 선배가

"어차피 너는 걔한테 사과할꺼 아니야? 그냥 사과하기 전에 넋두리하는거잖아."


그말이 맞다. 나의 넋두리가 상황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그냥 선배가 내 감정을 알아주길 원했던 것이다.

선배의 대답에 담긴 뜻은 내가 그냥 들어주길 원하면 들어주고, 선배 입장의 해결책이 듣고 싶으면 그걸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선배의 이 대답 한마디에 나는 정리가 되었고, 바로 그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인정만 하면 이 고민은 끝나는 일인데 이 한마디로 나는 '친구에게 사과를 하기로' 인정한 것이다.



왜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방식의 대화를 할까?


만약 내담자였다면, 심리학자는 절대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찾아서 본인이 정리할때 까지 수용적이고 긍정적인 리액션을 하면서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자들끼리의 사적인 상담은 다르다.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려고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학창시절부터 친구들이 많은 고민상담을 자신에게 해왔을 것이고, 상담도 잘하지만은 이미 평생에 걸쳐 해왔던 누적된 상담에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리학자들 끼리는 적어도 굳지 말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압묵적 합의 같은 것이 있다. 서로 프로들끼리 그냥 직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법은 많은 훈련과 세월에 의해 쌓여진 서로간의 신뢰가 있어야만이 가능하다.


나를 훈련시켜주신 상담심리학계에서 유명하신 한 교수님께서도 동창모임에 갔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퇴근해서도 너희들 이야기를 들어줘야 되겠니?"


심리학자의 친구들이나, 내가 '심리학자'라는 걸 아는 지인들이 있는 자리의 대화는 결국 상담으로 흐르게 된다. 어찌 피로하지 않겠는가. 서두가 기냐 길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대화의 한번 이상은 상담상황이 연출되어 버리니 심리학자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감정 에너지의 절약을 위한 배려'가 심리학자들끼리의 직진형 대화법을 도출한 것일 뿐 심리학자들끼리는 '차가운 토닥임'이 존재한다.


이미 앞서 나온 단체생활의 회피가 근본적으로는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나는 추측해본다.


* 라포(rapport)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말하는 심리학용어이다. 서로 마음이 통한다든지 어떤일이라도 터놓고 말할 수 있거나, 말하는 것이 충분히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상호 관계를 말한다(출처: 위키백과. 논문찾기 귀찮아서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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