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의 눈

성격심리학자들은 ‘성격이 안 좋다’ ⑤

by 유기적 시선

성격심리학자들은 ‘성격이 안 좋다’


내 글을 처음부터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나는 인지심리학자 쪽에 가깝다. 그러나 내면은 사회심리학 쪽에 가깝긴 하나, 이 또한 실험·통계 분석 쪽으로 치우쳐 있다.

심리학 분야에서 나와 거의 정반대 축에 있는 분야가 성격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이다. 오늘은 그 중에서 성격심리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리고 일화는 역시 있다. 항상 있다.)




성격심리학 교수님의 성격이 ‘유별났던’ 이유


성격심리학 교수님은 성격이 유별난 것으로 유명하셨다(이전 글에서 말하지 않았나? 성격심리학자들은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우선 성격심리학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성격심리학은 심리학 분야 중 유일하게 무의식을 인정하는 학문이며,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반면 다른 심리학 분야들은 무의식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무의식은 아직도 심리학 분야에서 뜨거운 감자로, 과학적 검증 전까지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 가깝다. 즉, '무의식을 당연한 전제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격심리학은 무의식을 그대로 인정한다. 당연히 교수님 역시 학생들의 자기보고서(self report)를 볼 때 자신의 무의식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 결과, 나의 유일한 ‘나쁜 성적’은 성격심리학에서 나왔다. 나는 대학생활 내내 심리학자 되겠다고 영혼을 갈아넣었으니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성격심리학의 핵심 과제인 자기보고서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교수실 문을 두드렸다.




교수님과의 짧고 기묘한 면담


우선 나는 대학시절부터 RA(Research Assistant)를 해왔으므로, 교수님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나도 교수님도 서로간의 경계심은 전혀 없는 분위기였다는 점을 말해둔다.


똑똑.

“들어와요.”

“교수님, 제 자기보고서에 대해 여쭤볼 게 있어서요.”

“그래? 한번 보자.”

교수님은 내 보고서를 훑어보시더니,

“흠…”

“어디가 부족했을까요? 알려주시면 다음엔 고쳐보겠습니다.”

“…글쎄… 잘 모르겠다?”

“네???”

“잘 모르겠는데… 뭐가 비어있긴 해…”


그게 끝이었다.

와… 교수님도 모르시는구나.


지금의 나는 그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면, 교수님도 내 무의식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나와 상담을 병행한 것도 아니니 어디부터 짚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한 학기 동안 제출했던 자기분석보고서는 대실패였고 그 학기 점수는 말 그대로 폭망했다.

반면 ‘성격심리학 교수님의 키즈’라고 불리던 유망주 동기의 보고서를 보니 성장 과정 전체가 투사(projection)의 향연이었다(적어도 쌉T인 내 관점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무의식을 억누르며 살았던 걸까? 그래서 내 희노애락은 왜 이렇게 밑도끝도 없고 해석도 안 되는 걸까?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다.




교수님의 ‘솔직한’ 발언


성격심리학 교수님은 수업 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 성격이 더러운 건 여러분도 아시죠?”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학력제일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특혜를 받으면서 자랐어요. 이 사회는 학력이면 인성까지 올바를 것이라는 왜곡된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고요."


맞다.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회적으로 너무 만연해서 잘못되었다고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을 왜곡없이 표현하시다니. 교수님을 생각을 막고있는 사회적/관습적인 잣대는 아예 없었다.

'교수님의 성격이 더럽다는 것'은 인성이 글러먹었다는 정의가 아니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눈과 용기가 있다는 의미였다.

심리는 막혀 있으면 왜곡되고, 비뚤어지면 병이 된다. 무의식을 인정해야 심리의 추적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밑도끝도 없이, 이유없이 밉고 싫은 사람'도 인정하는 무의식의 인정. 이 인정을 출발점으로 판단을 시작하면, 무의식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왜곡없이 추적할 수 있다.

교수님은 아마 내 보고서에서 내가 ‘무의식을 인정하는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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