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운명

by 엡실론
제가 글을 못 써서..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말끝을 흐렸다. 이름 외에는 채워야 할 모든 칸이 공란이었다. 겨우 썼다는 이름은 유치원생이 쓴 것처럼 삐뚤빼뚤하다. 썼다기보다는 그린 듯했다. 더 이상 못 쓰겠다는데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다. '일이 늘어나는구나..' 나는 일단 기다려보라며 돌아선다.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 초등학교 중퇴, 전국을 전전하며 막일하는 생활, 예기치 못한 부상. 온갖 가혹한 조건들이 사정을 봐주지 않고 자연재해처럼 발생한다. 이게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던가. 그의 지난한 세월은 감당이 되지 않는 수준의 것이었다.


눈앞에 닥친 파도를 헤쳐나가기도 버거운 상황. 글을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계획 같은 것도 사치였을 것이다. 그의 삶은 되는 대로 흘러갔고, 피해와 가해로 얼룩졌고, 돌이킬 수 없는 곳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가 열심히 살았다는 흔적을 볼 때마다, 어설픈 세 글자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운명의 가혹함을 떠올린다.


어릴 땐 운명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그 말에서는 짙은 패배주의의 냄새가 났다. 운명을 탓하는 순간 인간은 나아질 수 없으며, 주말마다 교회에서 기도나 해야 하는 삶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면 구원은 신에게서나 받아야 할 뿐이다. 나약한 인간들의 합리화. 난 운명 서사를 그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과, 운명과, 유전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 했다.


그런 노력이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실패한 일, 시도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명운을 걸었다고 할 만큼의 선택도 없었다. 이렇게 다들 운명에 잠식되어 가는구나 싶었다. 요즘도 허튼 노력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운명에 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기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런 나날들이 반복되고 생일이 여러 번 지날수록 운명의 족쇄는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운명이다'


대통령이 그 말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정치에 입문한 사람. 칠전팔기 끝에 정치인으로서의 최종점인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 그런 입지전적 인물도 마지막에 가서는 운명을 논했다. 그렇게 살았어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많았던 것일까.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는 법이고, 벗어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 그 지점은 명확해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평생을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겼던 헤밍웨이도 끝내는 총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애초에 운명은 극복하고 말고 하는 성질이 아니었던 것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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