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불필요의 필요

by 엡실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나는 늘 그렇듯이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 질 무렵의 강남 도로는 여지없이 주차장이 된다. 버스 앞 유리창 너머로 빨간 스포츠카가 보인다. 강남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페라리. 600마력은 족히 넘을 차가 여기선 버스와 나란히 기어가고 있다.


트랙에 있어야 하는 차. 페라리는 최소한 탁 트인 미국이나 유럽의 고속도로에 있어야 어울리는 차가 아닐까. 시속 100킬로 제한의 한국에 페라리가 어울릴까. 아니 필요할까. 더 적은 돈을 들이고도 더 안락하고 멋진 디자인의 선택지는 많을 텐데.


얼마 전 기사에 인용된 20대 결혼 인식 설문조사를 봤다. 20대 과반이 결혼은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모르겠다는 응답이 있었으면 결과는 좀 달라졌을까. 아마 아니겠지.. 30대 미혼율은 비혼에 대한 생각이 실제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교양 수업을 왜 들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종종 묻곤 했다. 비자발적 선택으로 이뤄지는 필수 교양 수업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함량 미달 교수가 가르치는 이런 내용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 싶은 의문이 늘 있었다. 사실 대학이 아니어도 초중고를 거치면서도 언제나 했던 생각이다. 수학을 배워서, 고전문학을 배워서 어디에 쓸 건가.


사람은 매 순간 선택하는 존재다. 이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의 관점에서는 모든 순간이 선택의 순간이자 결정적 순간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을 고민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뭘 하든 이게 지금 필요한 일인가 묻게 된다. 인생이 길든 짧든 불필요한 걸 하면서 시간을 쓰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봤을 때 이건 불필요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많지는 않은 듯하다. 선행 사건은 후행 사건에 영향을 주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결과는 과정을 재규정하기도 한다.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일이 필요했구나 싶은 순간도 온다. 그늘이 있는 삶보다 한없이 밝은 삶이 과연 100% 낫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고난은 불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불필요해 보이는 것과 불필요한 것은 아주 다른 개념이다.


타인의 고난과 성취를 무위로 만드는 일은 어린애들도 곧잘 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누군가에게 그딴 거 필요 없다고 말하기는 쉽다. 뭘 하든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 그러나 필요는 상대적이다. 지금 필요하진 않지만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고, A보단 덜 필요하다는 게 B가 필요 없다는 뜻도 아니다. 불필요하다는 말을 자꾸 할수록 닫힌 태도만 형성된다.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정말 필요한 선택만 하면서 살까. 나는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날리는 건 많이 봤다. 관록 있는 사람들조차 뭘 하고 하지 말라는 조언에는 신중한 편이다.


결국 각자가 필요로 하는 불필요한 것들이 다를 뿐이다. 누구나 불필요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굳이 강남에 살 필요도, 페라리를 탈 필요도, 그 직업을 선택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필요 불필요를 구별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무소유로 수렴한다. 우리는 어떤 불필요를 선택하면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할 뿐이다. 결혼은 20대에는 불필요할 수 있다. 필요하지 않으니 선택하지도 않는다. 단순 무결한 논리적 결정이. 그 결정이, 젊음의 만용인지 진정한 불필요였는지는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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