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숨겨진 충동이 다가온다.
가만히 멈춰 선다. 거리의 수많은 차들 사이로, 같은 표정의 얼굴들이 눈앞에 보인다. 그 얼굴의 표피를 한층 벗겨내면, 그들의 무의식이, 내면의 충동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 어느 것도 쓸쓸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리 생각하니 문득 애틋해진다. 이 시대가 지나면 함께 사라질 모든 존재의 모습을 사랑하고 싶어진다. 어렸을 적 본능적으로 영원을 꿈꿨던 그 아름다운 미소가 지워진 그 굳은 얼굴에서 그래도 이리저리 웃어보려 노력하는 이들의 삶의 고통이 느껴져 참으로 결연하기까지 하다. 그 의지들 속에서 자신을 채워줄 그 누군가의 서로를 애타게 찾는다. 다만 서로는 자신을 내어주려 하지 않고 벽을 세워 고독과 외로움을 느낀다. 그 고립감 속에서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마음을 닫아버린다. 물질이 주는 안락함과 고통의 해방을 위한 일시적인 쾌락들에 자신을 노출시킨 채, 영원을 꿈꾸며 타락과 상승을 시도한다. 건강에 집착하지만, 내면은 병들고 육체는 지쳐간다. 몸은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 포장되지만 예쁘게 포장한 선물의 줄을 푸는 순간 완벽했던 상자의 구조는 찌그러진다. 그 찌그러진 마음 안에 역설적으로 욕망과 환상이라는 채워지지 않는 무한한 높이의 매끄러운 탑을 쌓는다. 그리고 그 많은 타인과의 지나침 속에서 바다 위에 떠있는 부유하는 상반신과는 다르게 진실의 바다 아래에는 수없이 허우적거리는 다리의 교차가 생존을 위해 연신 몸을 일으킨다. 그 쉴 새 없는 움직임 덕에 몸은 휘청이지만 더 이상 떠오르지 못하고 하강하는 마비 상태에 도달한다. 연료를 모두 소진한 기계와 같이, 자본을 향한 수치와 확률만이 남겨진 발걸음은 새로운 충동을 거세시키고 일률적인, 그러니까 즉 자신을 노예, 혹은 기계라는 주어를 사용하며 합리화하고 안락함과 풍족함에 몸을 맡긴다. 이제 그들은 갈매기의 쏘린의 삶을 따라간다. 그 이어지는 궤적에 놓여 있다. “아, 이제 나는 죽는구나, 너무 늦어버렸어.. 난 시인이 되었어야 했는데..” 죽어가며 깨달은 진실의 절규는 이미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신의 가르침일 뿐이다. 신은 가르쳐주었지만 인간은 듣지 않았고 그곳엔 지옥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