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만약 내가 없다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녁 8시 구로역 전철에 내려, 개찰구를 찍고 나온다

한 중년 남성이 안전제일이라는 유니폼을 입고

땀에 절은 채 할머니의 팔을 붙잡고 어딘가로 이끈다.

남성의 한 손에는 연보라색 두툼한 보따리가 들려있다.

할머니는 불안한 기색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 중년 남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태도로 할머니를 이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나는 그 시각, 연기를 가르치려고 이동을 하는 중이었다.

인간을 가르치는 일, 감정을 표현하는 그 섬세한 기술에

과연 방법이 존재할까? 내가 하는 것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맴돌던 그때 나는 그 모습을 발견했다.

중년의 남성은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할머니는 이미 치매가 진행한 지 오래된 후였다. 아들은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양주까지 어떻게 가시려고요?! “ 할머니는 ”차를 타고 왔어요. “ 하고 정중하게 답한다. 아들은 그 목소리를 무력하게 듣는다. ”여기까지 대체 어떻게 오신 거예요? 네? “ 할머니는 누군가 자기를 태워줬다고 말한다. 아들은 그 소리를 듣고 구로역 백화점 앞에서 크게 소리친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하..! “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포기하지 못하는 중년 남성의 감정이 느껴진다. 저들은 연기를 배웠나? 저런 극한의 감정이라니, 진실함은 연기로 채워지지 않는다. 느껴야 한다. 그 고통을,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밤거리가 영롱하게 비친다. 주변 배경이 된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을 향해 바삐 움직인다. 신기하게도 둘의 모습을 보니 이 바쁜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치매에 걸린 어미를 찾아 돌아가는 그 아들의 성난 목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의 유일한 빛 같았다. 어둠이 더욱 어둡게 세상을 비춘다 하여도, 사라져 버린 듯한 그 빛은 사랑을 담아 더욱 빛난다. 나는 왜 그 모습에 슬픔과 찬란함을 동시에 느꼈는가? 같은 날, 어느 자식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 몰래 재산을 빼돌리고 연락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게 진실한 세상의 모습이고 옳은 길일까? 도덕과 윤리가 이 인간의 모순적 상황 안에서 판단이 가능한 영역일까? 한 인간로서, 아니 인간의 탈을 쓴 이성적 존재라면 그 근원은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할까? 이 인간의 진실하고도 가련한 삶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부여잡아야 할 인간성의 마지막 모습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오늘 그 빛을 보았다. 그 빛이 나의 마음 가장 어두운 어느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 빛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쉽게 꺼질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