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그 사람을 사랑했네요.
당신 너머의 당신은 1인칭 나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만일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다면 그 안에서 우린 어느 지점까지 타자를 마주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 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했다. 창작은 참으로 힘겨운 시기였지만, 그 나름대로의 공부와 경험으로 부족한 식견 앞에서 용기를 내어 2년 만에 영화를 완성해 볼 수 있었다. 주어진 삶 안에서 경험해 보는 것, 인생, 그 짧은 시간 안에는 결국 경험만이 남기에 이 모든 작업은 정말 아름다운 추억과 성장으로 남아있다. 이제 38살이 된 이 시점에서 나는 새로운 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인칭이 아닌, 확장된 시선으로 2인칭, 내가 아닌 너의 죽음이 가진 상실과 애도에 관한 글 작업을 진행해보려 한다. 이 글은 사랑했던 너, 유일무이한 대상이 사라진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멜랑콜리한 존재가 가진 근원적 불안, 상실을 간직한 자의 반복적 기억 행위, 떠난 이를 현실로 데려오기 위한 기술적 복제. 친밀하면서도 낯선 이를 잃어버린 인간이 가진 내면의 터널을 지나 깊은 애도의 행위가 될 것이다. 이 작업으로 내가 훗날 겪을 상실의 시간들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 무너지지 않는 용기를 다져보고 싶다. 3월이 시작되면서 고려대에서 운 좋게도 철학수업을 청강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는 정적이며 고요했다면, 고려대에서는 활력이 넘치고 열정이 느껴진다. 자크 데리다의 철학을 주제로 한 3시간의 철학 수업은 매 시간마다 나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면서 인간의 무의식이 가진 정신분석의 역사와 구조, 사회의 병리학적 내면을 심도 있게 파고들어 간다. 나에게 시간과 기회가 허락된다면 불혹의 나이까지 이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다. 그러던 중 또 가까운 누군가가 상실을 겪었고, 늦은 밤 기차를 타고 그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슬픈 눈빛이 한동안 나의 마음 안에 흔적으로 남겨졌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다는 사실이 이리도 처절히, 슬플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단독적 행위이기에 모순적으로 아름답게마저 느껴졌다.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의 눈빛이었다. 그것은 진실의 영역이며, 삶의 모든 껍데기를 벗기고 근원의 뿌리로 다가서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인간, 오직 인간에 대해 공부를 멈추지 않고 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카뮈는 이 죽어가는 시대 앞에서 예술 안에서 저항하고 연대하라고 외친다. 그리고 오사무는 오직 사랑만이라고. 소세키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하며 포크너는 우리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고 말한다. 살면서 비극은 언제든 파도처럼 밀려올 수 있다.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 비극을 아름답게 살아낼 수 있는 용기, 하야오의 말을 빌리자면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삶은 인간에게 가치를 상실한 삶일 것이다.” 나는 이번 생은 이 말들에 기대어 살아볼 생각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이 피었다. 이 꽃의 운명은 질 것을 알지만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찬란하게 피어난다. 나의 삶도 무 앞에서 그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