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자락이 담긴 가사였다.
갑자기 어머니께서 노래 한 곡을 보내시며 가사를 들어보라 하셨다. 지방에 계신 어머니께서는 항상 이렇게 연락을 하시곤 한다. 나는 노래의 첫 소절을 보고 어머니께 바로 전화를 걸었다. “부질없소.”라는 소절의 가사였다. 전화를 시작한 후 어머니는 반복적으로 가사를 들어보라는 말씀을 전하셨다. 문득 귀찮아진 탓에 잘 들었다고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재차 권유하시는 태도에 전화를 끊고 마지못해 그 가사를 들어보았다. 그 영상의 첫 가사를 듣고 Ai가 만든 노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영상 안에는 AI로 보이는 늙은 남성의 쓸쓸한 뒷모습과 자연이 배경으로 펼쳐졌다. 지극히 인공적인, 자본이 만든 그 기계적인 도구의 위로 속에서 어머니는 무엇을 찾고 계셨던 것일까? 다시 전화를 드려 가사를 들었다고 말씀드리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외가족 친척들 단톡방에 이게 올라왔고, 노래가 사무치는 자신의 마음을 울린다고 말씀하셨다. 일상적으로는 부족함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갑자기 고백하셨다. 이번 해에 들어 어머니께서는 죽음이 가까워짐을 느낀다고 자주 말씀하시고는 했다. 아직 노인이라 부르기에는 젊지만, 곧 노인이 돼버릴 어머니의 나이를 떠올려보면 그리 먼 시간처럼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시간들이 존재했다. 물론 지금도 상대적으로 따져본다면 누군가의 불상사나, 죽음들의 사건들 앞에서 살아있다는 이 사실이 참 축복이고 기적처럼 감사한 일이지만 절대적 조건 안에서는 자꾸만 우리의 시간이 더 이상 멀지 않았구나 라는 인식이 강렬해진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머니께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사실은 자연의 섭리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어머니의 삶이 허무하다고 여기시는 그 마음에서는 한 발 물러나셔도 좋다. 이것은 제 진심이니 부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 말을 전했다. 과거에는 어려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상황 속에서 여러 실수들로 지극히 가난했고, 그 가난 속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는 시대까지 넘어왔지만 인간에게 남은 것은 여전히 죽음뿐이라는 사실이 참 가련하기도 하고, 쓸쓸했다. 삶의 의미를 만들어보려 하지만 존재는 언제나 미끄러질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께 내 마음 안의 영원한 진실을 전해드렸다. 그녀는 내가 어렸을 때 정육점에서 고기를 한 덩이 팔고 가게 안쪽에 위치한 작은 방 안에서 울며 보채고 있는 나를 달래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의 나이가 현재의 나의 나이보다도 어린 삼십 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주변에서 정육점을 한 번 해보라는 말에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작은 건물에 정육점을 차리고 고기를 팔았다. 아버지께서는 비위가 약하시고 성심이 여리셔서 고기를 파는 정육점 사장이 되셨음에도 도축장에 가서 도축되는 동물의 눈망울을 보고는 불쌍해서 고기를 사 오시지 못하고 돌아오시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딱하게 여기시면서도 갓난아기들이 젖을 떼기 시작한 그때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붉은 조명 아래 정육점 안에서 날이 선 칼을 들고 직접 도축을 진행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살아가려면, 다른 생명은 죽음의 시간을 품는다. 그 영웅이 지금 나의 어머니이시다. 나는 옆방에서 울면서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고 싶어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어머니는 고기를 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품에 안아주셨고 나는 그 품에서 세상의 평온과 사랑을 느끼면서 부모님의 젊음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얼마 안 가 정육점은 장사가 되지 않아 접으셨고 아버지와 어머님은 또 다른 가게인 작은 호프집을 장만하셨고, 아버지께서는 다행히도 이번에는 적성에 맞으셨는지 열심히 어머니를 도와 일을 하셔서 우리 집은 가난에서 얼추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도 어머니께서는 과거를 추억하며 내게 말씀하시곤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반장이 되면 학생들의 부모님은 선생님께 일명 촌지를 드리곤 했다. 나도 어머니께 반장 소식을 전해드렸고, 자존심이 강한 나의 어머니께서는 드릴 게 없어 한탄하시더니, 소고기를 싹둑 자르고는 두 덩이를 신문지에 고이 접어 내 가방에 넣어주셨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나약해진 눈물 많은 어머니는 알고 계실까? 그때의 당신이 날이 선 부엌칼 하나로 한 가정을 지키던 그 강인한 소녀였단 사실을. 나는 어머니께 마음을 담아 긴 글을 보내드렸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나서도 하늘이 허락한다면 당신 같은 용기와, 성실함과 따뜻함을 품고 살았던 어머니의 아들로서 살아가고 싶다고, 나의 어머니를 완전한 성인의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대, 그 시절 자신의 아이를 위해 헌신을 다한 “어머니”라는 존재들은 의례 그랬듯이 이 땅 위의 나무였으며 바다였고 산이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든 자신의 두 발로 땅을 짚고 나무처럼 일어섰으며 고난과 헤일이 펼쳐져도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사랑을 간직한 채 자식을 품었다. 산의 정기와 푸르른 숲처럼 어떠한 죄악도 그녀의 사랑 안에서는 용서한 채 자식이라는 존재를 그 품 안에서 품었다. 나의 어머니는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자식을 위해 살아오셨다. 부엌에는 언제나 어머니께서 자리 잡고 계셨다. 내가 나이를 먹기 전까지 그 사실에 의구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는 사실이 나는 지금도 당황스러울 따름이고 그 무지가 무섭다. 그 이데올로기 앞에서 어머니는 굳건히 어머니라는 이름의 역할을 다하며 책임감 있게 성실히 사셨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 나이가 들어 죽음을 기다리면서 아들 앞에서 부쩍 눈물을 흘리신다. 한때는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며, 세상의 영원함을 느꼈던 어린아이는 이제 어미의 실존 속 흔들리는 존재 앞에서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나약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에 순종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마음을 긍정한다. 용기를 갖기를 거부하려 한다. 그 마음을 전복시키려는 그 감정에 대항한다. 바르트의 사랑에서 배웠다. 나는 무기력하며, 나약하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나의 나약함의 방증이자 증명이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한다. 바르트의 말처럼 나 또한 언젠가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난다면 살면서 한번 이상의 죽음을 경험한 채 죽은 자로 살아갈 것이다. 인간은 한번 죽는 존재이지만 만약 어머니께서 먼저 떠난다면 내 인생에는 두 번의 죽음이 펼쳐질 것이다.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고도 여긴다, 이 이야기는 그런 우월감에 젖은 채 말하는 진실은 아니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면, 우리는 이미 모두 일정 부분 자신을 죽인다. 그러나 그것에만 매달리며 관념 속에서 허무한 채 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 찰나의 순간 속 펼쳐지는 무아라는 축복이, 살아있다는 생동감이 삶이 내게 선사해 준 나와 어미의 연을 맺어준 그 우연에 감사함을 느끼며 늙고 병들고 사라질 아련한 존재들인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나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무상의 삶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사는 동안 기록할 것이다. 혹시라도 훗날 그녀가 여행을 떠났을 때 이 기록을 간직하고, 나의 어미를, 어머니를 나의 육체와 정신의 일부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게 추억하며 애도할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내 안에 살아있다.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녀의 얼굴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꽃과 볼링이고, 청국장이고, 국수이며. 사과를 좋아한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아들“ 이라며 사랑스럽게 부른다. 그녀의 그 따스한 목소리는 세상 속에 병들어 마비된 나의 존재를 다시 인간으로 살아있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