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나의 품에 꼭 안아보았다.

사라져 가는 나와 그녀의 숨결은 언제나 일정하다.

엄마를 나의 품 안에 꼭 안아보았다.

그때는 겨울이라 저수지가 얼어있었던 때였다.

얼음은 무섭기도 하지만, 순간의 고체화이기에 아쉽다.

그 결정력은 정말로 두렵지만 아름답기에.

누군가 그 얼음 앞에서 어머니를 꼭 안는 나에게,

사랑하는 이를 그리 꽉 안는 일이 왜 그리 어렵냐고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그 상실의 세계가 남기고 간 여분까지 감당하고

포옹해야 하니까.

그리 어렵지 않을까란 반문을 던질 테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세계 안에서

그녀(나의 어머니.)가 가진 숨소리는 실로 크다.

만약 이 숨소리가 언젠가 멎는다면,

내 세계가 가진 이 안전해 보이는 적막도

순간 무너지겠지. 그것은 재앙보다 더 큰

채울 수 없는 공허다.


그리 긴 시간이 남은 것 같지는 않게 느껴진다.

이 사실을 열거하는 나의 견해가 혹시라도

그녀의 삶을 결핍으로 치우친 삶이라고

여기기 위해 적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이것은 그녀가 나를 낳아준 어머니이며,

나의 심장의 일부이자-

나의 존재를 대변하는

영웅이자, 소전제라는 사실이다.


며칠 전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나에게 전했다.


그녀가 꾸는 꿈이 안식처가 되길 바라는 나는

그 꿈의 내용을 들어주었고, 일부분 긍정의 말로 다독임을

청했다.


그 꿈은 내가 아는 한 참으로 슬펐고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녀가 이 하루를 평온히 마무리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는 그것이 온전한 안식처라 느꼈다.


나는 그녀가 그 세계 안에 머물 기를 바랐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A와 B의 분리된 이분법처럼 단순한가?

모든 것이 그리 순탄할까?


소세키는 말한다.


“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슬픔이 묻어 나온다고. “


삶이란 그 슬픔의 연속이다,

어떠한 것도 그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의 사선을 뚫기는 어렵다.


그 무위의 경계에 우리는 도달하지 못한다.

골짜기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빈곤한 우울의 흔적뿐이다.

우리는 춤과, 열정, 존재하는 감정의

다양한 마음을 소실했다.


이 “순간” 은 사라졌다.



나의 엄마는

나에게 묻는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내 존재에 관해 묻는다.


내 존재에 질문을 던지는 이가,

이 세상에 있었던가?

사랑하는 이 몇을 제외하고는.


나는 대답한다.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그 빈 공간 안에서

나는 여전히 맴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하지 못한

한 마디를 던져본다.


부디.


한 순간이라도, 어떠한 고통도 없이

자신 스스로 당신 자신에게 머물기를,

푸른 하늘처럼 평온하고

저 새들처럼 지저귀며 자유롭기를,


그 흔적을 좇는 내 마음보다

당신의 그 하루가 온전하기를,


나의 어머니.

나의.




매거진의 이전글어머니께서 노래 가사를 보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