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종 한 묶음

무슨 사연이 있겠지

by 최오도

퇴근길에, 토마토 한 봉지를 들고 마트 계산대 앞 긴 줄에 서 있을 때였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내 시선을 자꾸 끌었다. 여자는 언뜻 아이처럼 보일 작은 체구에, 큰 가방을 멘 채로 한 손에 뭔가를 단단히 쥐고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늘종 한 묶음이었다.

긴 줄의 손님들이 물 흐르듯 계산대를 빠져나가고, 마침내 여자의 순서가 되었을 때였다. 그녀는 마늘종을 그대로 든 채 계산원에게 소곤소곤 말을 거는 듯했다. 분주한 계산원은 여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몇 번이나 “뭐라고요? 뭐라고요?” 물었고, 마침내 여자가 용기를 낸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반품하려고요..”

플리지아 꽃다발이라도 되는 듯 손에 꼭 쥐고 있던 그 마늘종 한 묶음을 여자는 반품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품이라는 거창한 단어와 마늘종 한 묶음의 부조화 때문이었을까? 계산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 곧바로 여자가 내민 영수증을 확인하더니,

"근데 이거 어제 구입했던 거 같은데, 맞나요? 900원인데.."

가격 900원의 야채를 하루 지나 가져와 반품해달라고 하는 여자, 계산대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시선이 일순간 여자에게 꽂혔다. 기묘한 침묵의 공기.

“네, 어제 산 거예요. 생각해 보니까 필요한 거 같지 않아서요…”

여자는 조용히 파란색 카드 한 장을 내미는데 고양시에서 준 재난지원 충전 카드다. 다시 한번 침묵이 흐르고..

“손님, 정말 죄송한데, 재난지원기금으로 받은 전자 상품권은 구입 후 바로 취소는 가능한데, 24시간 지나서 취소가 들어가면 상황이 매우 복잡해져요”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나는 공연히 불안해졌다. 저 자그마한 여자가 한심한 갑질녀로 돌변하는 일이 생기는 건가...

그런데 여자는 서비스 운운하며 화를 내기는커녕 거의 울상이 돼서는 “그럼 어떡하죠? 어떡하죠” 한다. 그 사이 계산대 뒤로 손님의 줄은 점점 길어져만 갔다. 차라리 여자가 화를 냈다면 덜 민망한 상황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여자는 거의 울듯한 인상으로 계산대 앞을 가로막고 발을 동동 구른다. 마치 오늘 마늘종을 취소하지 못하면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혹시 여자가 들고 있는 것이 마늘종 한 묶음이 아니라 무슨 폭발물? 아니면, 9만 원을 내가 900원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다행히 계산원이 묘안을 제시했다.

“손님, 괜찮으시면 900원어치 다른 물건으로 가져가셔도 될까요?”

이 말끝에 울 것처럼 서있던 여자는 금세 환하게 웃었다. 여자가 마늘종과 영수증을 계산원 옆에 놓고 물건을 고르러 떠나자, 계산원을 아무 일 없었던 듯 내가 올려놓은 방울토마토의 가격을 확인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마트 입구로 올라가는데 계산대에서 본 여자가 야채 코너 앞에서 신중히 뭔가를 고르는 모습이 보였다. 어깨에 걸린 큰 가방이 무겁게 느껴진다. 저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하루 지난 야채를 들고 마트에 오기까지,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야.. 마늘종을 반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900원짜리 마늘종 한 묶음을 들고 계산대 앞 긴 줄에 서있던 여자의 사연을 생각했다 그저 별 사연이 없는, 그냥 까다로운 소비자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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