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저녁 시간을 만드는 법

별거 아니지만, 다정한

by 최오도

연휴 동안 길고 짧은 나들이를 했다. 일요일에는 남편 일로 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회의를 마치니 거의 9시가 다 되어 갔다. 나는 귀중한 휴일을 회의나 하면서 보냈다는 생각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차에 타자마자 짜증을 내자, 남편은 왜 하루 종일 잘 도와주고서 막 판에 짜증을 내냐고 했다. 생각해보니, 새 사무실 인테리어 한다고 새벽 6시부터 책장 정리를 하고 가구 배치하며 움직였던 남편에게 짜증을 낼 일은 아니었다.


배도 고프고 휴일이 가는 것도 아쉽고, 에너지는 딸려서 그랬다고, 사과는 하지 못하고,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분위기는 금세 싸늘해졌다.


9시 넘은 휴일 저녁에 밥을 먹을 만한 식당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았는데 마침 ‘노랑 통닭’ 집 간판이 보인다. 남편이 통닭에 맥주로 저녁을 때우자고 했다. 내가 흔쾌하게 좋다고 말하자 남편은 웬일이냐며 좋아한다.


뜨끈 뜨근한 통닭 한 마리와 치즈 떡볶이, 맥주 4캔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가니 아들이 엄마 무슨 일이야 하며 놀란다. 이 늦은 시간에 통닭을 사들고 들어오는 일은 엄마 사전에 없는 일 아니냐는 말이다. 사전도 시대 따라 개정판이 나오듯이 엄마의 사전도 가끔 특별 부록이 끼어들고 그런다고 눈으로 말해 주었다.


오랜만에 술상을 차려서 세 식구가 둘러앉았다. 우리 집 냥이는 일찌감치 식탁 한편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구들이 다 모여서 파티를 하니까 냥이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기만 할 뿐 고기 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우리들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 아들이 최근에 군대 간 친구한테 전화를 받았다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내년에 군대를 가려고 계획 중인 아들은 요즘 군대 얘기를 자주 한다. 예전에는 군대에서 얼굴 위장할 때 구두약을 발랐는데, 요즘은 피부에 나쁘다면서 올리브 영 제품을 쓰라고 권장한다는 친구에게 들은 신 군대문화를 알려준다. 요즘은 남녀노소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요'를 외치는 시대 아니던가. 아무리 군대라고 해도, 설령 포로로 잡힌다고 해도 구두약을 얼굴에 절대로 바르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 군인들은 실제 전투에 나간다고 해도 선크림 없이는 죽는 줄 알 거라고 하자 아들이 맞다며, 웃겨 죽는다.



우리 냥이까지 네 식구가 함박 웃는 모습을 핸드폰 셀카로 찍었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고 우울했었는데, 덕분에 기분 좋게 저녁 시간을 보냈다. 야밤의 치맥이 몸에는 안 좋을지 몰라도 가족의 다정함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정한 저녁 시간을 만드는 법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