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쓴 가을 시
일곱 살 즈음에 강경 외갓집에서 한 계절을 보냈었다. 외갓집 툇마루에 앉으면 발아래로 기찻길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심심했던 꼬맹이의 유일한 놀이는 툇마루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를 구경하거나 앞마당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잎들을 눈으로 좇는 것이었다. 바람 한번 불 때마다 커다란 감잎들이 가을볕 가득한 마당 위로 맥없이 툭툭 떨어졌는데, 그 풍경이 어린 마음에 어떤 예술적 감흥을 주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예술적 감흥 따위에 신경 쓰기보다는 감나무 잎들이 어수선하게 마당에 쌓이는 것에 훨씬 신경을 쓰셨다. 마당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싸리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할머니는 마당을 쓰느라 온종일 바빴다. 할머니의 마당 쓰는 소리 뒤에는 할아버지의 불만 섞인 잔소리가 이어지곤 했다. 할아버지는 잎이 떨어질 때마다 비질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을 하는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뭐라고 잔소리를 하든 말든 싸리 빗자루로 마당에 예쁜 빗금을 남기면서 가을을 보냈다. 마당에 떨어진 감나무 낙엽들은 외갓집 아궁이로 들어가 솔가지들과 함께 타닥타닥 타면서 밥을 지었다. 어둑해진 마당으로 밥 짓는 냄새와 나무 타는 냄새가 하얗게 퍼질 무렵 언덕 아래로 강경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천천히 지나가곤 했다.
그 저녁 무렵의 정취와 낙엽 타는 내음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 같은 마음이 섞인 어떤 것이 내게 있어 가을 냄새로 각인되어 있다. 어디서건 ‘가을 냄새’가 느껴질 때면 감나무 낙엽을 쓸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상영된다. 그 장면에는 투덜투덜 잔소리를 하시는 할아버지와 엄마가 보고 싶은 꼬마 아이가 툇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침에 숲길을 산책하다가 ‘가을 냄새’를 맡았다.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이제는 지상에 없는 사람들을 가을 냄새 안에서 따스하게 껴안았다. 외갓집 마당 위로 쌓이던 감잎처럼 그리움이 하염없이 마음에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