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호의의 유통이 필요할 때
“아 이것 봐요. 차가 출발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따라온다니가. 하하”
연세가 꽤 들어 보이는 마을버스 기사는 출발 직 후의 차를 급히 세우며 허허 웃는다. 곧바로 한 청년이 헉헉 거리며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15분마다 운행되는 마을버스이기에 한대 놓치면 추운 정류장에서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뛰었을 청년은 함박 웃으며 고맙습니다,를 외친다. 청년의 얼굴이 기분 좋게 빛났다.
온종일 먹구름이 낀 것 같던 날이라도 이런 행운에 기분이 활짝 개이기도 한다. 버스 기사의 작은 호의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나보다 기분이 더 좋았던 분이 버스 안에 계셨던지 큰 소리로 기사님 칭찬을 한다.
“10년 넘게 마을버스 타고 다니는데, 기사님이 제일 친절해요. 늦게 타거나 하차 벨을 잘못 눌러도 화를 안 내시니까 부담 없고, 기분도 좋아요. 하하”
“출발 후에 정류장 지나서 차를 세우면 위반이에요. 그런데 타겠다고 막 달려오는 승객 놓고 갈 수가 있어야지.. 매번 태우게 됩니다. 하하,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화낼 일이 뭐 있습니까. 하하”
승객의 덕담에 기사님도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는다. 두 남자의 소소한 정담은 내가 하차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오래된 선후배 사이처럼 다정해 보인다. 업무상 만난 사람과 드물지만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버스기사와 승객이 친구가 되지 못할 것도 없겠다.
마을버스를 타기 직전에 지하철에서 노인과 청년의 싸움을 목격했었다. 마스크 잘 쓰라고 서로 언성을 높이고, 욕설과 주먹질이 오갔다. 결국 지하철 수사대까지 출동하는 소동을 본 터라 마을버스 기사와 승객이 주고받는 덕담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로 생긴 불안과 공포가 바이러스처럼 잠복해 있다가 핑곗거리를 찾으면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요즘이다. 최근에 지하철과 거리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별거 아닌 일에 흥분하여 언성을 높이고, 작은 기침 소리에도 일시에 얼굴을 찡그리며 한발 물러선다. 서로가 서로를 바이러스 감염체의 숙주로 보는 듯하다. 옆사람의 체온을 증오하게 하는 여름 징역보다 차라리 더 혹독하더라도 겨울 감옥을 택하겠다는 고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펜데믹 시대에는 무용하게 들릴 정도이다. 옆사람의 체온이 두렵기만 한 펜데믹의 경험은 그것이 종식되더라도 곳곳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 같다. 더 무서운 것은 어쩌면 그 후유증이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지 우리가 전혀 모른다는 것이 아닐까?
이럴수록 우리에게 마스크만큼 필요한 것은 작은 호의의 유통이 아닐까 생각했다. 쿠팡이나 배민에서 호의를 총알 배송받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그 유통의 택배 기사는 우리가 자임해야 하지 않을까? 1일 1 호의 배송! 총알배송, 새벽 배송이 아니어도, 설령 과잉 포장된 택배 상자라고 하더라도, 누구도 불만족하는 일 없을 것 같은데..
마을버스 기사의 '별거 아닌' 호의와 이를 알아챈 승객의 덕담이 만든 온화함이 작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바이러스의 공포는 잠시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의 사람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