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초원의 위로

화양연화의 시간

by 최오도

일리노이주 어바나 샴페인에서 사는 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곳은 ‘메도우부르크'라는 이름의 프레리(Prairie, 대초원) 공원이었다. 보존지구인 프레리 지대 주변에 산책로가 있어서 대초원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고, 특히 해질 무렵이 장관이었다.


공원을 둘러싼 오솔길은 여름 내내 붉은 열매로 뒤덮였다. 언뜻 빨간색 꽃이 만발한 것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와일드 스트로베리, 산딸기 군락이었다. 산책 갈 때마다 영양제 챙기는 심정으로 한 움큼씩 따서 입에 털어 넣곤 했다. 한국 노인들이 미국 공원에서 고사리를 캐다가 체포되었다는 얘기가 있어서 늘 주변을 잘 살피고 조심스럽게 따 먹었다. 그러나 산딸기는 증거를 남기지 않고 훔치기 어려운 과육이어서 덤불에서 나올 때면 손가락과 입가는 붉은 산딸기 즙으로 흔적이 남았다. 나중에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야생 베리류를 그냥 따 먹는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여름 내 나의 손가락과 입술은 산딸기 즙으로 물들었고, 그때마다 내 마음도 산딸기처럼 붉고, 탱그르르 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열두 살 아들을 꼬셔서 대초원으로 산책을 다녔다. 걷거나 초원을 바라보는 일에는 흥미가 없는 열두 살 아이가 매일 저녁 엄마를 따라나섰던 이유는 해지기 직전 갑자기 등장하는 반딧불이 춤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평생 도시에서 살았던 아이는 꽁지에 노란 불빛을 반짝이며 춤을 추는 곤충을 그 공원에서 처음 보았을 것이다. 대초원 위로 누군가 몇 자루의 금가루를 흩뿌려 놓았는데, 마침 저녁 바람이 불면서 금가루가 훨훨 날리는 것처럼 반딧불이들이 분분했다. 처음에는 초록색, 노란색이 섞이다가 오렌지색으로, 다시 연분홍과 보라색, 그리고 흑청색과 먹색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반딧불이들의 군무는 황홀하다는 표현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누군가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광에 대하여 자랑을 한다면, 나는 큰소리로 석양에 물든 대초원과 반딧불이의 향연만큼은 아닐거라고 우길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아들과 내가 오렌지색에서 연분홍으로 막 물들기 시작하는 대초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숲에서 홀연히 사슴 한 쌍이 나타났다. 대초원에서 사슴을 마주하는 일은 흔했지만 그날처럼 조용히 우리 옆으로 다가온 사슴들은 처음이었다. 자세히 보니 엄마와 아기 사슴이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그 엄마와 아기 사슴을 대초원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들은 초원에서 걸어 나와 풀 숲 위로 목을 비쭉히 내밀고 우리를 맑고 커다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완전 미국 스타일야”, 하며 씩씩하게 보내던 날들이었지만, 표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썼을 뿐 혼자서 아이 데리고 남의 나라에서 살는 일이 어디 그리 내 스타일처럼 맞기만 했을까. 날마다 용기와 자존감을 조용히 끌어올려야 하는 날들 속에, 대초원에서의 산책이 주는 고요함과, 말없이 우리를 바라봐 주던 사슴 가족의 눈빛에서 나는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던지... 그때는 그것이 위로라는 이름의 감정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냥 좋고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을 뿐. 그곳을 떠나 다시 대도시 서울로 돌아왔을 무렵, 그것은 대자연이 보낸 대단한 위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마음이 지칠 때면 그 대초원에서 만났던 엄마와 아기 사슴의 눈빛을 떠올려 본다. 미국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을 나는 ‘화양연화’의 시간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것은 많은 부분 대초원에 빚지고 있는 기억이라 하겠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마치 대초원 오솔길 위에 서있는 것처럼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마음에 피어오른다. 직접 가볼 수 있는 날이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다시 꼭 가볼 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 눈 감으면 언제나 생생히 떠올 릴 수 있는 그곳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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