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더 많은 동백꽃이 필요하다
주말 장터 한편에 수십 개의 동백나무 화분들이 줄 맞춰 서있었다. 흙 묻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붉은 꽃송이를 서너 개 씩 매달고 동백나무들은 떨고 있었다. 잿빛 바람 부는 한 겨울, 홀연히 등장한 붉은 꽃나무들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 세우기에 충분했다.
나도 덩달아 동백나무 구경꾼 틈새에 끼어들었는데, 하, 꽃 구경꾼들이 머리카락 하얀 할머니들이 아닌가!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할머니들이 살고 있었다니! 동백나무보다 할머니들이 훨씬 많은 듯 보였다. 그녀들은 평생 동백꽃 피기만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열심을 다하여 꽃송이를 바라보고 서 있다. 장미나 백합, 카라 같은 화려한 꽃들을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터 동백꽃 같이 애틋한 꽃이 눈에 들어온다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별걸 다 나이 탓을 한다며 웃었지만, 그 말이 웃자고 한 소리만은 아니었나 보다.
동백꽃 앞에서 할머니들이 소녀처럼 다정하고, 수다스럽다.
“참 곱다, 애썼다, 얼마나 추웠을까?” 할머니가 아이에게 하듯 동백에게 말을 걸자, 옆 할머니가 대답한다 “동백은 눈 속에서도 피는 꽃이야” 그러면서 봄이 되면 동창들이랑 꽃구경을 갈 거라고, 다짐 같은 자랑을 한다. 어느새 화분 한 개씩을 가슴에 끌어안은 할머니들은 혼잣말 같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마냥 즐겁다. “나도 한때는 너희들처럼 붉었단다.” 누군가 이런 말을 읊조린 듯하다. 찬 바람 속에서 할머니들의 야윈 볼이 동백만큼 붉어졌다. 나는 그 틈에서 한참이나 동백꽃을, 아니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예쁜 꽃은 많지만 동백만큼 마음을 애태우는 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날, 천천히 꽃 피우는 걸 보겠다는 마음으로, 꽃봉오리가 많이 달린 동백나무 한그루를 샀다. 그러나 장터에 있을 때는 금세라도 터트릴 듯 보였던 꽃망울들은 그해 봄까지 고집스럽게 껍질을 열지 않았다. 그러던 4월의 어느 날, 때 없이 눈이 펑펑 오던 날에 꽃봉오리들은 뚝뚝 베란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꽃봉오리가 맺었으면 자연적으로 열리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꽃을 보고 싶은 마음만 너무 컸던 모양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큼이나 꽃봉오리도 열리기 힘든 것인 줄 미처 몰랐다. 그 후 이년 동안 동백은 매년 수십 개의 꽃봉오리를 맺었지만 늦겨울이 되어 겨우 한두 개만 붉게 열릴 뿐이었다. 그 사이 아기 손가락 같던 가지들은 내 손가락만큼이나 굵어졌다.
겨울 들어 다른 화분들은 모두 거실로 옮겨 놓았지만 동백은 베란다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눈밭에서 꽃을 피우는 동백을 거실에 들여놓은 것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면서.. 초록색 도토리 같은 봉오리에 붉은 마음을 감추고, 동백은 영하의 베란다에서 꿋꿋하다. 올 겨울에는 어쩐지 붉은 마음들이 껍질을 열고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희망이라는 마음에 빛을 비추면 동백만큼 붉은색이 되지 않을까? 길고 긴 판데믹의 터널에 갇혀 있는 이 겨울, 우리에게는 더 많은 동백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열리는 순간이, 희망의 붉은 마음들이 터지는 순간이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하다.
그날 겨울 장터에서 아기 동백나무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간 할머니들의 동백꽃이 궁금해졌다. 바라건대, 할머니들의 동백나무에서는 더 많은 꽃들이 붉디붉게 활짝 열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