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를 보내고 생각하는 것들

존재의 특별함

by 최오도

불이의 털이 잔뜩 붙어 있는 아들의 검은색 후드티를 개다가 한참을 울었다. 슬픔을 그런 식으로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불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어디서든 고양이만 보면 무조건 안고 쓰다듬고, 말을 건네는 버릇이 생겼다. 몇 주 전에 순자의 탁묘를 부탁받았을 때 무조건 예스를 하고 탁묘 일이 오기를 고대했다.


스코티쉬 스트레이트 종으로 이제 막 네 살이 된 순자. 분홍색 이동장에서 나오자마자 거실과 3개의 방, 앞뒤 베란다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탁묘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낯가림 없이 명랑하게 호텔 객실을 체크하는 여행객처럼 구석구석을 체계적으로 살핀다.


순자는 검은색 털인데 얼굴에 초콜릿색 얼룩무늬가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동그란 눈의 귀여운 미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세히 보아야 확인되는 순자의 미모를, 집사 부부는 ‘억울한 외모’라고 말했다. 사실, 억울한 것은 순자가 아니라 집사인 우리들이었다. 순자의 미모를 담으려고 사진을 계속 찍어 보지만 SNS에 자랑질할 한 장이 쉽지 않다. 아, 진짜 예쁜데, 보여 줄 수가 없네..


웬만해서는 방문 열고 나오지 않는 아들도 “고양이 왔다”는 한마디에 바람처럼 나와서 순자를 따라다녔다. 순자 집사의 말대로 순자는 금세 ‘젊은 남자’를 알아보고 엉덩이를 내밀며 토닥토닥해달라고 했다. 순자는 신기할 정도로 낯선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없는 것 같다. 경계심은커녕 직접 ‘젊은 남자’를 찾아 나설 기세다. 우리 불이하고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이 느껴졌다. 불이는 가족들에게는 유난한 개냥이였지만 식구가 아니면 쌩하고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도도한 스타일이었지.

불이와 아빠

술 한잔을 마시고 늦게 집에 온 남편도 순자를 따라다니며 “아가, 아가” 부른다. 술이 거나해서 오면 나는 신경질을 내며 쌩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반면 불이는 술냄새 따위 대수냐는 표정으로 남편을 반겨주곤 했다. 우리가 예의 상 방문 열고, 어, 왔어 정도 할 때, 불이는 자다가도 벌떡, 날 듯이 뛰어가 남편 품으로 안겼는데, 이러니 남편 기분이 어땠겠는가? 오랜만에 냥이를 만나 기분 째지는 남편은 예쁘네, 예쁘네 하며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도 표현을 잘 안 해서 그렇지 불이가 많이 보고 싶은 모양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불이가 준 위로가 엄청난 거였어... 없으니 알겠네. 순자 보니까 불이가 더 보고 싶다.”


성인이 된 아들과 무덤덤한 부부 사이에서 우리 불이는 아기이고, 친구이며 연인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퇴근해서 지친 몸으로 들어오면, 고생했냥, 괜찮냥, 하루 종일 기다렸다냥, 하는 눈빛으로 따라다니고, 안아달라고 조르던 불이. 그토록 간절하고 다정한 눈빛 샤워를 날마다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고 위로였던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최신작 '클라라와 태양'에는 인공지능 로봇인 클라라를 통해 죽어가는 딸, 조시의 '부활'을 계획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는 클라라에게 조시의 생각과 행동을 ‘복제’ 시켜 조시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클라라는 조시로 복제되더라도 조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조시의 특별함은 조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이가 죽은 후 나도 조시의 엄마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불이와 똑같이 생긴 아비시니안 종 고양이를 새로 입양하고 싶었다. 가능한 똑같이 생긴 녀석을 찾아서 이름도 불이라고 부를까? 나의 불이가 다시 살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불이와 외모가 같다고 해서 불이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럴수록 불이가 더 그리워지리라는 것을.. 순자의 탁묘를 하면서 새삼 확인한다. 순자가 예쁜 만큼 불이가 더 그리워졌다. 클라라의 말대로라면, 그리워 힘든 마음을 회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 마음 안에 내가 사랑했던 존재의 특별함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흘러가도록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순자가 옆에 붙어 앉아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순자의 특별함을 발견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순자를 번쩍 안고 얼굴에 부비부비 해줬다. 당황한 순자는 아직 우리 이럴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하는 눈빛이다. 순자는 냥, 하고 소리 낼 때, 분홍색의 작은 혀가 입 밖으로 살짝 삐져나오는 특징이 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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