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하고 야릇한 이야기
외할머니가 시집와서 첫아들을 낳았을 때, 외할아버지가 두 돈 짜리 금반지를 해주셨단다. 패물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었던 할머니는 그 반짝이는 작은 반지가 어찌나 귀하고 어여쁜지, 손수건에 돌돌 싸서 경대 속에 넣어 두고 가끔 바라만 보았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마음으로, 저녁 준비할 참에 반지를 껴보고 그대로 저녁 준비를 하였는데, 저녁 설거지를 하다 보니 왼쪽 약지에 끼어둔 반지가 없더란다. 할머니는 차마 할아버지에게 말도 못 하고 여러 날을 혼자서 온 집안을 뒤집고, 펴고 접고 하면서 반지를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때 내 마음이 아궁이 속처럼 새까맣게 아조 다 타버리더라”
말없고 퉁명한 남편이 처음으로 다정하게 건네 준 정표. 그 귀한 걸 어이없이 잃어버린 어린 새댁의 마음은 잿빛으로 무너지고, 주인 떠난 그 금반지는 까맣게 타들어 간 할머니의 가슴에 묻혀 깜빡깜빡 애닮은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그 첫아들이 서른 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그 금반지가 끼워졌었던 물망초 같던 손가락이 늦가을 낙엽처럼 시들기 시작할 무렵, 그 반지가 돌아왔다. 할머니가 뒷마당의 텃밭에서 저녁에 먹을 상추를 뜯고 있는데, 흙 틈에서 무언가 반짝해서 들춰보니, 아, 세상에 그 반지가 거기에 있더란다. 삼십 년 동안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여전한 모양으로 그 자리에 있더란다.
할머니는 그 금반지를 당신 돌아가실 때까지 왼손 약지에 끼고 계셨다.
내가 젖먹이였을 때, 사업을 하던 아빠가 빚 독촉을 피해 잠시 집을 떠났을 때라고 했다. 우리 가족이 중구 필동의 작은 양옥집에 살 때였다고 하는데, 일주일 안에 돌아오겠다면서 약간의 생활비를 건네주고 나간 아빠가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엄마는 나를 업고 막내 이모를 앞세워 미아동 어디에 있는 점쟁이를 찾아갔단다. 점집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아빠의 행적을 물어보았는데, 한 점쟁이가 서쪽 바닷가에 아빠가 있다고 알려주더란다. 엄마는 지도를 펴놓고 막연히 서쪽 어딘가를 살펴보다가 무작정 군산행 기차를 탔다.
“네 아빠 기다리던 한 달이 십 년 같더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달리 알아볼 방법도 없고 연락할 길도 없었으니까, 일단 한번 해보자 하는 심정이었지, 아빠 못 찾더라도 바다는 보고 오겠지 싶었다.”
엄마가 생면부지의 군산역에 내렸을 때, 마치 하늘 아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름 태양만이 역 광장에 가득하더란다. 무작정 역 광장을 걸어 나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저 역 건너편에서 키 큰 남자 하나가 역 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데 그 남자가 아빠였단다. 그날 진짜 놀란 건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아니었을까. 점쟁이 말만 믿고 무작정 서쪽 바닷가를 찾아 기차를 타고 온 젊은 아내가 얼마나 측은하고 반가웠을까.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그 밤으로 서울로 돌아왔는데, 이후에 닥칠 일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더라고 하였다.
친구의 할머니는 칠십에 첫사랑을 만나서 재혼을 하였다.
할머니는 열여덟 쯤 열렬히 사랑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시절 많이들 그랬듯이, 양가의 반대로 억지로 헤어졌고, 선을 봐서 결혼을 했고 그 남자 생사도 모른 채 오십 년쯤 살아오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첫사랑을 동네에서 마주치게 되었단다. 처음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그 할아버지가 한눈에 할머니를 알아보고 이제는 당신도 낯설어진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를 알아보겠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의 심장은 아주 오랜만에 쿵하고 소리를 내며 홍안의 첫사랑을 기억해 내더라고 하였다.
밀란 쿤데라는 마술처럼 신비한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고, 오직 우연만이 무엇인가를 얘기해 준다고 하였다.
물망초 같은 새댁의 마음을 새까맣게 태웠던 안타까움이, 젖먹이를 둔 엄마의 막막함이, 심장에 새겨둔 첫사랑의 애잔함이 빚어낸 신비한 이야기들. 우리가 믿거나 말거나, 세상에는 이런 신비한 이야기들이 하늘의 별만큼 많은 것 같다.
나와 당신의 어떤 이야기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신비한 이야기로 회자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