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을 둔 아빠의 고백

사는다는 것은

by 최오도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우리 딸이 그랬거든요. 있잖아요? 정말 꽃처럼 주변까지 환하게 해주는 존재,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칭찬받는 아이, 그런 애였죠...."

유난히 큰 눈을 가진 동료의 눈에 살짝 물기가 돌았다.

"제가 퇴근해서 들어가면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조르륵 달려와서 품에 안기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 확 변하는 거예요. 정말 이게 내 딸이 맞나? 혹시 다른 아이가 집에 들어온 건 아닌가 할 정도로..


눈만 마주쳐도 분노를 토해내고 죽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뺕는데... 어느 날부터 학교도 가지 않겠다고 하니까, 이제 5학년 밖에 안된 아이가 죽고 싶다고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나는 출근하니까 그나마 아이와 충돌이 덜한테 아내는 온종일 아이와 붙어 있다 보니, 아이도 아이지만 당장 아내가 쓰러질 것 같아 나는 더 불안하더라고요"

점심에 후배 동료가 작년 말부터 아이가 학교를 거부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속 얘기를 털어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두 계절이 지나면서 큰 폭풍은 지났는지 아이기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가 방에서 뭘 하느냐고 물었더니, 온종일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러다 게임도 하고 그런단다. 내 자식 문제가 아니니 훨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아이가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글을 쓴다는 말이 또 확 들어와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아이 문제를 겪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나나 아내나 다들 좋은 부모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때는 내가 잘나고 좋은 부모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변하고 나니까, 그저 아이가 우리에게 고분고분하고 착했던 것뿐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앞으로 어떻게 아빠 노릇을 해야 맞는 건지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어릴 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울 아버지 초등학교도 못 나온 무식쟁이에다 막노동, 술주정, 가정폭력, 그러다 오 남매 남겨두고 일찍 돌아가셨죠. 나 중학교 1학년 때.. 아빠를 원망하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아요. 누나들은 고등학교 마치고 다 독립했고, 도시로 나와 누나네서 중학교부터 다녔는데,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을 엄청 했어요. 매일매일 죽고 싶다고 느꼈었죠. 화가 났던 것도 같아요. 나를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것에,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에,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는 것도 다 화가 나대요.

그때 일을 나이 들면서 다 잊었었는데 아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떠올라요. 아마 내가 그때 심각한 우울증 상태였던 것 같은데, 식구들이 다 먹기 살기 바쁘니까 어떻게 나 혼자 버텨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남편 죽고 갑자기 오 남매의 가장이 된 우리 엄마는 세상을 어떻게 버티며 살았을지 이제야 생각해 보네요"

지금 내가 겪는 부모로의 고통은 사실 그때 엄마의 고통에 견줄 수도 없이 가벼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부모님 세대 고생한 얘기를 들으면 우리가 토로하는 힘듦이란 아이들 장난처럼 가벼워 보일 때가 많다.

후배에게 내가 뭐라고 조언을 해줄 능력도 없지만, 후배의 말속에 사실은 답이 다 들어 있었다. 아이를 믿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묵묵히 해야 하는 것, 그 외에 더 무엇을 우리가 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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