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소녀로부터 온 손편지

우리는 서로에게 참 고마운 존재

by 최오도

손편지를 받았다. 아홉 살 소녀로부터. 문고리에 걸려 있던 에코백에 치토스와 비스킷 한 봉지, 사탕 4개, 그리고 사각형으로 접힌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쪽지에는 연필로 또박또박,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주머니, 오늘 고양이 사료 주셔서 감사했어요. 덕분에 고양이들이 포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숙제를 해야 해서 길게 쓸 수 없었어요. 고맙습니다 ^^’


오후 산책길에 아파트 재활용 창고 뒤에서 나오는 단발머리 여자 아이를 보았다. 불쑥 말을 걸면 놀랄 것 같아 아이가 나를 볼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고양이 밥 주는 거니?” 마스크 위로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지면서 조그맣게 네, 그런다. 혹시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건가 싶어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아이가 겁먹지 않게 본론부터 빨리 말했다. “아줌마네 고양이가 얼마 전에 죽었단다.” (이 말에 아이의 눈동자가 한껏 커졌다) “우리 고양이가 다 먹지 못한 사료가 많이 있는데 그거 길고양이에게 네가 좀 나눠줄래?” (아이의 눈이 다시 반달 모양으로 다정해졌다.) 언제부터 길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했냐고 물으니 1월부터 시작했다고, 우리 동에 고양이 네 마리가 산다고 알려주었다. 자기 집은 고양이는 기르지 않고 강아지만 있다고 했다. 나이는 아홉 살이란다. 수줍어하면서도 또박또박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동 16층에 산다고 해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집이 있는 3층에 내렸다. 데리고 들어가 간식이라도 먹이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아이 부모가 걱정할 수도 있어서 문 밖에 기다리게 했다. 잽싸게 집으로 들어가 불이(우리 고양이 이름)가 남긴 건식 사료와 습식 사료를 에코백에 담아 나왔다. 불이가 남긴 사료가 많은데 작은 소녀 덕분에 길고양이 몫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길고양이 밥 주는 거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예쁜 생각을 했을까? 아줌마가 다 고맙네.. 그런데 있잖아, 오늘은, 우리가 고양이로 딱 통해서 괜찮은데, 모르는 어른이 자기 집에 가자고 하면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혹시 아이가 오늘의 좋은 기억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쉽게 따라갈까 걱정이 되어서 굳이 덧붙였다.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남을 믿지 말라고 당부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아이는 명랑하게 폴더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들이 문고리에 뭔가 걸려있다며 들고 들어 왔다. 아까 그 아이가 쪽지와 선물을 놓고 간 것이다. 아들은 아이가 쓴 편지를 보더니 “엄마 나보다 필체가 더 좋은데..” 하면서 웃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한없이 선하고 투명한 눈을 가진 꼬마 아가씨 덕분에 아줌마 마음이 살구꽃 핀 과수원처럼 환해졌단다. 우리 불이도 그랬을 거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