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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un 23. 2020

살구 병조림 만들기

리베카 솔닛처럼 쓰기

리베카 솔닛은 남동생으로부터 몇 자루의 살구를 넘겨받는다. 돌아가신 엄마의 정원에 있는 오래된 살구나무에서 수확한 살구들이다. 그녀는 이미 무르익어 과즙이 진물처럼 흐르기 시작한 살구 더미를 침실 한 곳에 신문을 깔고 펼쳐 둔다. 침실 가득 달콤한 살구향이 채워질수록 골아서 먹지 못하는 살구의 수도 늘어만 간다. 무르익어 달콤하나 도저히 먹어치울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살구 더미, 골라내서 버리지 않으면 남은 것들까지 섞게 만드는 농익은 살구들은 그녀가 오랫동안 회피해 온 자신이 어떤 감정들과 같은 처지임을 그녀는 뒤늦게 깨닫는다.

리베카 솔닛은 우연히 떠맡게 된 살구 더미를 매개로 마음 깊이 숨겨둔 죽은 엄마에 대한 오래된 분노와 환멸을 고백하고, 그리움과 화해의 글을 쓴다. 그 이야기가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묵직한 한 권의 에세이가 된다. 살구 더미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마술사의 손끝에서 끌려 나오는 파티 리본처럼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녀도 글에 썼지만, 한 번 시작된 글은 어느 순간 작가의 손끝을 떠나는데, 그런 단계에 이르면 글이 스스로 작가도 인식하지 못하던 어떤 생각을 찾아 스스로 진군한다는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이는 그것이 어떤 마법인지 알 수 없으나, 글을 쓰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떤 이야기나 문장이 불현듯 찾아올 때가 있는데, 어쩌면 그런 순간들이 연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리베카 솔닛 같은 대가들의 글을 읽으면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커진다. 그러면서도, 그가 말하는, 또한 많은 작가들이 말하는 그 마술적 순간들이 너무나 매혹적이라 한 번은 그 웅숭한 물속으로 풍덩 온몸을 던져보고 싶다. 그래서 아무튼 조금씩이라도 읽고 쓰게 된다.

솔릿은 살구 더미를 통해 어머니, 여자, 자신에 관한 긴 이야기 썼다. 그리고 잘 익고 싱싱한 살구들은 병조림 안으로 들어갔다. 진공 상태의 유리병 안에서 살구는 더 이상 짓무르거나 썩지 않고 달콤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엄마에 대한 감정들도 글로 써져 책에 담김으로써 해석되고, 이해되고 확장되었다.


쓴다는 것에는 그런 확장의 힘이 있다. 그 힘을 믿고 쓰다 보면, 솔릿처럼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글로 된 통조림 하나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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