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
구십을 바라보는 노모가 딸에게 보내 신 검은 깨 들기름 다섯 병. 혼자 사는 그는 들기름 다섯 병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어 큰 언니에게 두병, 시집간 큰언니 딸에게 두병을 나눠주고 달랑 한 병을 집에 남겨 두었다.
노모는 딸이 택배를 받고도 잘 받았다는 말이 없자 일주일쯤 기다리다 전화를 하셨다. 평소에 귀가 어두워 먼저 전화하시는 법이 없는 양반인데 꽤나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딸은 엄마에게 들기름 다섯 병을 혼자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언니네 나눠주고 한 병만 남겨두었다고 순순히 말했다. 엄마는 그 말에 불같이 화를 내면서 “왜 너 먹으라고 보낸 걸 언니를 주고 그러냐”면서 전화를 끊었다.
“친구야, 엄마가 나이가 드시니까 정말 아이처럼 변하나 봐. 남을 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화내실 일이 야 이게?”
노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며 혼자 사는 막내딸이 늘 안쓰럽다. 멀리서 당신이 해줄 것이 없어 더 안타까울 뿐인데, 어느 날 티브에서 검은깨 들기름이 속에 좋다고, 저명한 의사 양반이 나와서 말을 하더란다. 엄마는 그날 바로 씨앗 상에 나가 검은 들깨 종자를 사다가 텃밭에 뿌려 여름내 키웠다. 검은 들깨는 종자도 귀해 읍내의 여러 가게를 돌아 겨우 구할 수 있었는데, 불편한 엄마 다리로 아마 하루가 꼬박 걸렸을 것이다. 올여름엔 유난히 비도 많이 내려 반은 썩고 반은 넘어져, 겨우 들기름 다섯 병을 건졌다. 엄마는 혹시나 방앗간에서 들깨가 바뀌기라도 할까 봐 새벽부터 따라나가 소쿠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얻은 들기름 다섯 병.
엄마의 그 마음이 애틋하게 녹아있는 들기름 다섯 병. 엄마가 큰 딸 준 것이 아까워서 그랬겠는가. 엄마가 막내딸에게 주려고 봄부터 얼마나 가슴을 부풀렸겠는가. 그 마음 모르고 홀라당 언니네로 들기름을 다 넘겨주었으니 엄마가 속이 상한 거겠지.
“친구야, 나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엄마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엄마 마음을 모르는걸까?”
나는 그녀의 물음에 그냥 미소 지었지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 엄마가 되어 보지 않아서 엄마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닐 거야. 엄마가 없어 본 적이 없어서 엄마 마음을 모르는 거겠지.’
나도 엄마 살아 계실 때는 엄마 마음 몰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 애틋한 마음을 조금 알겠더라. 들기름 다섯 병에 들어 있을 엄마 마음을 그래서 아주 조금 알겠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