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코트에 따르면, 질투는 정상이고 건강한 감정입니다. 아이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질투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랑할 능력이 없다면 질투도 할 수가 없습니다. 3화에서 아기가 손가락을 빠는 행위는 엄마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애정 표현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이처럼 질투라는 감정도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사랑할 능력을 발달시키면서 나타나고, 건전한 방식으로 분리가 잘 일어나면서 질투의 감정도 잘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쯤되면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의존과 독립을 얼마나 잘 조절하는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해도 무방해보입니다.
아이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질투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돌 ~ 15개월정도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엄마와 어느정도 분리가 일어나야, 엄마가 내 소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엄마를 소유할 수 있음을 알고 질투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화에서 다루었듯이, 아기는 본래 엄마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엄마와 일치된 존재인데, 점차적으로 손가락 빨기 등과 같은 행동을 통해 외부세계로 나아가게 되고, 그것은 엄마와 일치 상태를 벗어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엄마에 대해 원초적인 사랑의 감정도 느끼게 됩니다. 즉, 돌 ~ 15개월 정도가 되어야 다른 사람도 엄마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로 아기가 감정적 발달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엄마들이 동생을 수유할 때 큰 아이들이 힘들어하거나,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최초의 질투가 수유와 관련이 깊은 것은 수유 행위가 아기가 엄마와 하는 관계, 즉 두 인간 존재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실천하는 문제(아기, 가족, 그리고 외부세계(위니코트, p.34))이기 때문입니다. 유아 수유에 대한 이야기는 위니코트의 또 다른 대중 서적 '아이, 가족, 그리고 외부세계' 'CH4 유아수유'를 다룰 때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초기 유아기 때, 아기와 엄마가 분리되지 않았을 때, 아기가 욕망하는 것(엄마)은 자기 자신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아기는, 자기가 욕망하기만 하면 그 욕망이 바로 이루어져(배고프다 생각하는 순간 젖가슴이 눈 앞에 나타나는 등), 스스로 전능하다고 느낍니다. 이후, 감정적 발달을 통해 엄마가 외부세계에 속한 대상이란 걸 알게되면 이제 엄마가 일종의 소유물이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질투의 감정을 느끼기 보다는 자신에게 중요한 소유물을 지키는 형태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엄마가 동생에게 장난감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장난감을 원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발달이 일어나면서, 아이는 이제 자신의 것이었던 엄마가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엄마를 원하는 것은 여러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질투를 하기 시작합니다. 아기는 이 시기에 동생이나 엄마가 집중하는 책을 시기하게 되고, 일시적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기 위해 엄마를 완전히 소유했던 시기였던 유아로 돌아가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오줌을 다시 싸기 시작한다거나 젖병을 원하는데, 이는 엄마를 완전히 소유했던 시절처럼 대우받을 수 있다는 증표를 얻고 싶은 것입니다.
아이는 발달을 하면서 마음 속에서 질투가 사라지는 변화를 겪게 되는데, 위니코트는 그 세 가지 방식을 설명해줍니다. 자연스러운 발달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올바른 발달의 방향을 이해하고 있으면, 주변의 근거 없는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부모들이 지혜로운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 가지 방법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상 속 파괴, 둘째, 만족스러운 경험 흡수, 셋째, 타인의 경험 즐기기(상상놀이) 입니다.
첫째, 상상 속 파괴는, 쉽게 설명하면, 아이가 동생이 태어난 것에 대해서 화내고, 불안해하고 공격성을 보이며 동생을 괴롭히고, 괜히 엄마를 힘들게 만드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위니코트에 따르면 이런 파괴적인 행동들은 질투를 극복하는 과정 뿐만 아니라, 정신적 성숙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며, 이런 아이의 파괴적인 행동으로부터 살아남는 굳건한 가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이의 정신건강과 성숙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늘 강조합니다. 9화에서 다시 다룰 예정)합니다. 아이는 아기가 돌봄을 받는 모습을 처음에는 기분 좋게 지켜보는데, 그 돌봄의 대상이 내가 아니고 동생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면 아이는 엄마와 아기에 대해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양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느낀 아이는 극도의 분노를 경험하게 되는데, 아이는 이 분노 중 일부를 표현하게 되고, 엄마는 동생이 태어나고나서 아이가 변했다고, 질투를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신뢰할 수 있는 환경'(11화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을 만들어 주는 것인데,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이란 아이의 이런 파괴적인 행동에도 아기와 엄마는 살아남고, 엄마의 아이에 대한 태도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아이는 환상과 현실을 아이는 점점 구분하게 되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점점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상처받게 하는 꿈을 꾼다는 사실에 점점 슬퍼하게 되는데, 이 것이 실제가 아니라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서 약간의 위안을 받으며, 이제 점점 동생에 대한 관심이 생겨납니다. 관심이란 분노와 사랑을 통합할 수 있을 때, 그 대상의 행복과 안녕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이러한 정신적 성숙은 굉장히 미숙해서 금방 또 다시 분노로 변할 수 있지만, 이런 아이의 상상 속 파괴활동은 아이에게 직접 행동을 취할 필요를 줄어들게 만들고, 아이 내면에서 책임감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큰 가치가 있습니다.
둘째, 만족스러운 경험의 흡수란, 쉽게 말하면, 동생과 상관없이 엄마 아빠와 보낸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누적되어 엄마 아빠에 대한 아주 긍정적인 관념이 형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드물게 전혀 질투를 보이지 않는 아이는 자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넘치는 사랑을 받아 조금은 나누어 줄 수도 있는 경우입니다.
셋째, 타인의 경험 즐기기란,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봄으로써 그 사람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며 공감하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큰 아이들이 동생이 자신의 장난감을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표현하면서도 일부러 동생이 만질 수 있는 곳에 장난감을 두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동생이 자신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즐기는 것이고, 이는 내 입장도 생각하지만 동생의 입장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상 속에서 타인의 경험을 살아 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인데, 상상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이 능력을 발달시키게 되고, 감정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고 위니코트는 보았습니다.
이 세 가지 방법을 아이가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위니코트는 부모가 해야할 일들도 아주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미리 예상할 수 있게 하기(동생에 관련된 책 읽어주기, 동생이 생기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행복한 일이 라는 메세지 전하기 등), 공평하게 대하기(동생도 엄마를 완전히 가졌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아빠와 책임 공유하기, 큰 아이에게 소중한 물건을 동생에게 주지 않기 등), 충분히 화내고 질투하고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환경 제공하기 등이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그 조그마한 아이가 동생이 태어남으로 인해서 이렇게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처리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아이의 스트레스를 잘 조절해주기 위해 부모가 조금 더 배려하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가 너무나도 큰 감정이 한꺼번에 와서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앞으로의 일들을 예상할 수 있게 조금씩 배려하여 세상을 소개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아이는 질투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동생이나 또래 친구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보였던 질투의 모습이나, 그 감정을 극복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부모로서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며 느꼈던 생각이나 고민, 그리고 해결 방법도 함께 공유해 주시면 다른 부모님들께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