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없는 말 한마디가 남긴 서운함
수진이가 서운해했다.
요즘 얼굴 보기 어렵다며,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보러 가겠다고 하자,
“하나야~ 무리하지 마~”
라는 답이 돌아왔다.
표현은 부드럽고 상냥했지만,
그 안엔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수진이는 직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보다
늘 이런 식으로, 나이스한 말투 뒤에 감정을 숨기곤 했다.
그래서 애써 시간을 냈다.
그날도 쉬운 날은 아니었다.
내 아이는 얼마 전 등에 화상을 입었다.
치료와 간호, 불안한 마음으로
정신이 몹시 분주했던 시기였다.
게다가 아이는 장거리 차 이동을 힘들어해
외출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수진이의 마음을 풀고 싶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에는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감정이 묻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수진이에게 느낀 감정보다,
수진이가 나를 어떻게 느낄까를 더 의식했고,
그 감정은 현실보다 훨씬 오래된 감정 구조에서 나온 것이었다.
만약 그 순간의 감정이 ‘지금’에만 속한 것이었다면,
아마 나는 몸 상태를 이유로 외출을 미루거나,
짧은 안부로 마음을 전하는 정도에서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 안간힘은, 결과적으로 나만 더 지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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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말하지 않으면 나의 서운한 마음을 수진이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조심스레 꺼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정신이 좀 없었어.”
그런데 수진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아 그래? 그랬구나” 정도. 놀라는 기색도 크지 않았고, “그랬으면 말해주지”, “몰랐어, 미안” 같은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도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틈에 대화는 흐트러졌고, 나는 스스로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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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수진·미정이와 여행을 함께했을 때 나는 아이의 화상 이야기를 미정이에게 조심스레 꺼냈다. “우리 애는 등에 데였는데, 손이었으면 정말 위험할 뻔했어. 손은 크게 다치면 자라면서 피부가 못 늘어나서 움직임에도 제한이 생긴다더라.”
그 말에는 ‘구축’ 같은 단어 대신,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더 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혹시 잘 모를까봐, 나는 조심스럽게 풀어서 설명했다.
그런데 수진이는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 구축 오는 거?” 그 말엔 놀람이나 공감보다 “나도 알아”라는 반응이 먼저 느껴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아는 엄마도 그런 적 있었어. 애가 폭죽놀이하다가 손에 살짝 튄 건데 붕대 안 하고 싶어 하더라. 결국 하게 돼서 속상해했대.”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이 서늘해졌다.
그 엄마의 상황은 붕대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정도의 가벼운 상처였다. 그에 비해 우리 아이는 입원을 권유받았고,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수진이의 말은 그 차이를 보듬어주기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욕구에 이끌려 내 감정의 결을 단숨에 덮어버렸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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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크게 공감받고 싶어서 말을 꺼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을 조금 알아봐 주는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내 말은 하나의 ‘정보’로 흘러가 버렸고, 그날의 상처는 조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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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겠다”라는 말은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오히려 마음의 틈을 넓힌다.
위로는 말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을 진짜 들어주는 자세로 전해지는 것임을, 그제서야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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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한테 연락 자주 못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말한 건데, 네 반응이 좀 서운하다?”
그날 수진이의 집에 갔을 때, 그렇게 말했더라면
내 감정을 조금은 더 알아채줄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여행 중, 화상 얘기를 꺼냈을 때는
“야, 내가 다른 엄마 얘기 들으려고 이 말 꺼낸 거 아니야.
그냥 좀 위로받고 싶어서 얘기한 거였는데,
네가 갑자기 주제를 돌리니까 좀 당황스럽다?”
이렇게라도 말했으면
적어도 나 혼자 속앓이하진 않았을 것 같다.
이제는
그 말을 꺼내지 못한 내가 아닌,
그 말을 꺼낼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든,
내 감정을 존중하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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