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척, 지배하려는 마음

엄마를 닮은 친구로부터 벗어나기까지의 기록

by 틈 사이의 온기

“하나 아기는 생각보다(?) 안 예민해서 괜찮을 거야~”
한 단톡방에서 친구 수진이 이렇게 말했다.
순간 ‘생각보다’라는 말이 내 귀에 딱 걸렸다.
(사실 그 당시엔 나도 감정의 억압이 심해, 그 말이 잘 걸리지도 않았다.
늘 나를 낮추고 희화화하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웃으며 “ㅋㅋ 아빠 유전자랑 섞였나?”라고 받아쳤지만,
다른 친구가 “오히려 생각보다 뭔데ㅋㅋㅋ” 하자
수진은 “하나 애기니까? ㅋㅋ”라고 덧붙였다.

다른 친구들이 은근슬쩍 나를 감싸줬다.
“하니ㅠㅠㅠㅠㅠ”라고 말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순간에도
나를 낮추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게 내가 그 ‘굴레’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조기진통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날.
수진은 자주 말하던 “제일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전화 한 통 없었다.

내가 단톡방에서 조심스럽게 서운함을 에둘러 표현하자,
미정이는 “하나야 선물이라도 보낼게ㅠㅠㅠㅠ”라며 바로 감정적으로 반응해줬다.
그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수진은 말도 안 되는 자기 스토리를 줄줄이 카톡으로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어쩌면 짜증이었고
“그만 징징대”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임신이나 출산엔 원래 다 말 못할 고생이 있는 거야’
너만 힘든 거 아니라는 뉘앙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점점 거리를 두고,
그녀의 ‘관계 패턴’에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하자,
그녀는 더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직접적인 사과도, 진심도 없이
관계 기술로 다시 나를 자기 어장에 가두려 했다.

단톡방에선 내가 반응할 만한 육아나 교육 관련 소재를 툭툭 던지며 나를 낚으려 했고,
수진은 한 5년, 아니 10년 전쯤부터
다른 친구들이 여전히 나를 ‘하니’라고 부를 때에도
혼자서만 ‘하나’라고 불렀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관계의 권력을 쥐고 싶은 방식이었다.

내가 확실히 선을 그으니,
한밤중 12시 반에 “하나”
읽씹하자 다음날 밤 11시에 “하나 요즘 괜찮나?”
그리고 전화를 걸고… 안 받자 그제서야 멈췄다.

그건 진심어린 걱정이 아니라
**“넌 아직도 내 영향권 안에 있지?”**라는 확인 같았다.
그 감각이 낯설지 않았다.
엄마와 똑같았다.



수진은 내 감정을 외면하고, 무시하면서도
내가 산 육아템은 꼼꼼히 기억했다.
정보는 챙기고, 감정은 외면하는 방식.
내가 자기 집에 못 갔던 사정은 기억 못 하면서도
내가 언제 뭘 샀는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멀어질 것 같으면
단톡에서 슬쩍 감정에 걸릴만한 화제를 던졌고,
다른 친구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나도 내 말 듣고 그렇게 했을 거야~”라며
자신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녀는 내가 잘되는 걸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아질수록 불편해했고,
진짜 괜찮아지는 내가 위협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많은 노력 끝에 아이와 관계가 좋아졌다는 사실은
절대 직접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대화 속에서
“애 끼고 사는 엄마들이 그러더라~” 같은 말로 애둘러 깎거나,
“가정환경에 따라 생각하는 게 다르지 뭐~”라는 식으로
내 원가족 문제를 슬쩍 끌어와 감정적으로 쳐냈다.
아마 그녀는 그런 말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직접 그 뉘앙스를 들어본 사람은 안다.
그건 절대 가볍지 않았다.

다른 친구였다면,
“니가 엄마랑 그런 관계였어도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사랑이가 저렇게 밝게 크고 있잖아.”
그렇게 말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수진은
자기 아이와의 애착이 좋지 않을 가능성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늘 자신만만했고,
“난 죄책감 같은 건 없어”라며 확신을 내세웠다.

나는 오랜 시간 그 친구를 지켜봐왔다.
그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불편해했고,
그 부분만 나오면
지나치게 자신을 포장하거나,
누군가의 관계적 성과를 깎아내리려 했다.
관계는 그녀의 아킬레스건이었고,
그래서 내가 거기에서 자유로워질수록 더 불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소름 돋는 건,
사소한 건 꼭 칭찬한다는 거다.
그건 엄마도, 수진도, 또 다른 통제적인 사람에게도 공통된 특징이었다.

내가 수진의 딸 머리를 예쁘게 묶어줬을 때,
그녀는 “오~ 역시 딸맘은 다르네? 머리 잘 묶네?”라고 말했다.
사실 그녀도 딸이 있지만, 그 말엔
자기 감정은 감추고,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만 인정하는 태도가 묻어났다.

엄마도 그랬다.
나는 어릴 때 머리를 예쁘게 묶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엄마는 “나는 머리카락 잘 못 묶어주겠더라” 하며 늘 회피했다.
연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엄마였다면,
딸이 그렇게 바란다면 가발을 사서라도 밤새 연습했을 것이다.

또 다른 통제적인 엄마도
머리 묶는 것 같은 작고 눈에 띄는 ‘행동’만 유독 과하게 칭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건 진심에서 나오는 인정이라기보다,
관계의 핵심에는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통제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처럼 느껴졌다.

정작 그들이 진심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건,
자기 통제권을 벗어나는 누군가의 ‘깊이 있는 진짜 장점’이었다.
그건 너무 눈부시고, 너무 위협적이었고,
그래서 차라리 외면하거나 덮어버렸다.
시기와 통제는, 칭찬의 방향조차 제한했다.



사실 나는
늘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늘 연락을 해왔고,

내가 자기만큼 자신에게 마음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해서 늘 조금씩 서운해하고 불만을 표현했다.

그럴수록 나는 그 친구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친함이 아니라,
감정적 장악이었다.
내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해주기보다는 조종하고 싶어했던 마음.
그건 엄마와의 관계에서 너무도 익숙했던 패턴이었다.

이제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단톡방도, 카톡도, 전화도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이 감정은 내 것이고,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어장 안에도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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