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새엄마 신화 속 새엄마는 누구인가?

by 틈 사이의 온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아이가 무언가에 화가 나 엄마를 밀치며 '싫어!'라고 외치는 그 순간. 그런데 몇 분 뒤엔 엄마 품에 와서 꼭 안기며 '사랑해'라고 속삭이죠.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양극단의 감정을 오갈까요?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이런 복잡한 감정을 통합해 나가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어린아이는 선과 악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통합해 가는 과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권선징악형 이야기는 우리의 유아기적 환상을 이루어주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새엄마 신화는 아이가 선과 악을 분리해서 이해하는 유아기적 환상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엄마의 특징 중 선한 부분과 악한 부분을 분리하여 악한 것은 모두 새엄마에게로 투사해버림으로써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성인의 경우, 한 인간 안에 양 극단의 요소들이 공존할 수 있으며, 동일한 사람에 대해서도 복합적인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어느 정도 이런 유아기적 환상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권선징악형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고 그 속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엄마 신화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없을까요? 이러한 새엄마 신화는 유아기적 환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합니다. 이런 이해는 양육 과정에서 죄책감과 불안감을 낮추는 데 효과적입니다.


아기는 태어난 직후에는 완전히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이므로 아직 자기(self)가 인식하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순간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아기는 이러한 생의 초기에 '엄마의 헌신' 덕분에 점점 자기(self)의 개념을 발달시키게 되고, 자신이 생의 시작부터 절대적 의존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통해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엄마의 절대적인 권력에 대한 두려움 또한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추가로, 어린아이는 자신 안에 있는 사랑과 공격성(파괴적 충동)을 함께 견디는 능력을 발달시키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도덕성 발달과 연결됩니다. 이는 뒤에 9화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아기는 똑같은 엄마에 대해 두 가지 양극단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성숙하며 성장하게 됩니다. 엄마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는 좌절에 대한 분노로부터 엄마가 살아남으면서 보상과 재건의 기회를 얻게 되면 아이는 양극단의 감정을 통합할 수 있게 됩니다(9화 참고). 이를 통해 점점 독립적인 인격체로 엄마와 다양하게 상호작용하며 화를 내기도 하고,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며 좀 더 입체적이고 깊은 관계를 맺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엄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상상 속에서 이미 아이를 사랑하고 있지만, 실제로 태어난 직후에 아이를 보자마자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금방 아이를 사랑하게 되지만, 무슨 마법처럼 아기를 안자마자 감동처럼 사랑이 밀려오지는 않는, 지극히 평범하고 좋은 엄마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마의 죄책감에 대해서는 8화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인데, 쉽게 말하자면 엄마가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무한한 사랑의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먹고 자기만 하는 생애 초기 시절을 지나게 되면, 엄마가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좀 아이로부터 벗어나 쉬고 싶은 생각도 들고 하는데, 이 아이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관계를 맺을 때 느끼는 감정들처럼 말입니다.


즉, 아이와 엄마의 관계도 현실의 지극히 평범한 관계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우리 집에 와서 너무 오래도록 같이 지내다 보면 좀 자기 집에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또 오래 보지 않으면 보고 싶고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화가 날 때에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하지만, 남편이 오랜 기간 출장을 가면 애틋해지고 보고 싶고 또 그런 법입니다. 이런 보편적인 관계의 방식이 엄마와 아기의 관계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이 있을까요?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이를 점차 통합하며 성숙해 갑니다. 이 과정에서 엄마 역시 아이에게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솔직히 마주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며 관계를 더 건강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엄마가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위니코트는 엄마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이에게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많은 육아서의 조언은 엄마가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며, 오히려 엄마들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방해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위니코트의 이론은 이러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나 자신으로서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상호 존중의 태도는 단순히 육아의 좋은 방식이 아니라, 아이와 엄마 모두가 복합적인 감정을 통합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토대가 됩니다. 이 개념에 대해서는 11화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저는 종종 아이와의 관계를 연애의 관계에 대입해서 생각해보곤 합니다. 연애 초기에는 둘만 데이트하고 매일 붙어있다가, 익숙해지면서 서로의 장단점도 알게 되고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신뢰와 이해를 쌓아가죠. 엄마와 아이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아기의 생애 초기에서는 엄마와의 밀착 육아를 강조하는데, 우리가 연애 초기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양극단의 감정을 통합할 수 있게 되면서 엄마와의 관계가 견고해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기게 되면, 아이는 학교에도 가고 다른 친구들도 만나며 아빠와 다른 친척 어른, 학교 선생님과도 다양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와 엄마의 관계는 복합적인 감정과 이를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깊어집니다. 아이의 사랑과 미움, 이 모든 복합적인 감정은 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엄마로서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아이와의 관계는 더 깊고 의미 있는 여정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또는 여러분이 아이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셨던 적이 있나요? 그 순간, 아이가 이를 잘 통합하고 견딜 수 있도록, 또는 여러분 스스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함께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손가락을 빠는 행동 속에 담긴 아이의 발달 심리와, 엄마와의 관계 형성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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