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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석 Mar 01. 2017

12. 날아올라 나라 (1일차)

나라는 어떤 나라?

고시엔 구경을 마치고 나라행 열차를 탔습니다. 종점인 킨테츠나라 (近鉄奈良)까지 가면 되는지라 안내방송 신경 안 쓰고 전자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얼굴책도 하면서 한 시간 정도를 쓰고 나니 열차는 종점에 도착. 

일본 지하철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 열차별로 차량 대수가 다르기 때문에 라인도 색상별로 분류해놨습니다. 각역 정차 열차의 4번차나 특급 5번차가 서는 곳으로 표시가 되어 있고 색에 맞춰서 줄을 서면 됩니다. 처음에는 대체 어디에 어떻게 서야 하는지 몰랐지만 생활하다보니 나름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더군요.

종점에서 내려서 300미터 정도 걸어다니 게스트하우스가 나왔습니다.

다다미가 깔린 전형적인 일본집입니다. 안 좋은 건, 문틀이 낮기 때문에 머리를 몇 번이고 부딪쳤던 기억이. 저절로 공손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뭐 평균키라면 문제될 게 하나도 없지만 평균 이상의 키인지라 -_-

8인실 철제 침대에서 자다가 4인 나무 침대에 누워 있으니 뭔가 아늑한 기분이 들더군요.

공용공간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코타츠. 앞에 갔던 게스트하우스는 테이블이 주를 이뤘지만 이 곳은 일본집 그대로를 사용하던거라 주방에만 식탁이 있고 공용공간은 좌식입니다. 만화책에서 자주 보던 코타츠에 다리를 집어 넣고 스위치를 켜니 따뜻한 게, 귤이나 까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가득.

주인 아저씨가 부리나케 나와서 하이 하이. 삐그덕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게, 오 정말 일본집인가란 느낌. 일본 전통가옥은 벽이 얇기 때문에 조금만 소리를 내도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괜히 조용하라는 말을 하는 건 아닌 듯.

배가 고파서 킨테츠나라역 근처를 배회했습니다. 나오기 전에 나라는 어떤 음식이 유명한가 물었더니 그런 거 없다고 하더군요 (뭐지?). 그래서 찾아보겠다고 싸돌아다니던 중 닭집을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라 토종닭이 꽤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토종닭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야마토사시미 4종세트로 결정. 1,380엔이면 싼 건 아닌데 과연 뭐길래?

가라아게, 사시미, 나베 등 닭요리가 다양합니다. 특히 지계 (地鳥)라고 써 있으면 토종닭으로 보시면 됩니다. 나라 토종닭으로 한 여러가지 요리를 먹어보기로 하고 처음 시킨 사시미를 기다리던 중.

드디어 등장했습니다. 비주얼로 봤을 땐 뭐 이 정도면 오케이라고 하겠지만 왼쪽 위부터 닭가슴살, 위장, 심장 간입니다. 닭가슴살이야 익힌 것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위장, 심장은 상당히 느낌이 새로웠달까. 뭔가 쫄깃쫄깃한 맛이 가득했습니다. 어떤 동물이건 간 퍽퍽한 건 마찬가지인 듯. 닭 간도 상당히 퍽퍽하더군요. 입맛 돋구기엔 딱 좋은 메뉴지만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허기진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여 다른 메뉴는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메뉴로 땅땅땅.

모모타다키. 타다키야 뭐 겉을 살짝 익힌 건 매한가지. 쫄깃하니 맛이 있었는데 숨은 주인공은 오른쪽 아래 구석의 와사비였습니다. 일반 와사비보다 훨씬 짙은 색에 맵기는 서너 배 이상. 대체 뭘로 만든 와사비냐고 물었더니 와사비에 고추를 넣어 갈은 거라고 하더군요. 먹는 순간 으어, 할라피뇨 고추가 들어간 느낌에 와사비 고유의 쏘는 맛이 함께 있던지라 코가 뻥하는 기분이더군요.

양파에 싸서 홀짝홀짝~

요리를 먹는데 술이 없어선 안 되겠죠? 오늘도 역시나 츄하이 두 잔으로 속을 달랜 후 야마자키로 시작. 대체 술 먹으러 간거냐고 물으신다면 하루도 안 빼놓고 먹었습니다.

배가 살짝 모자라서 꼬치 5종을 시켰습니다. 소스가 있는 건 있는대로, 없는 건 없는대로, 소금맛은 소금맛대로 맛나더군요. 그렇게 실컷 먹고 나왔더니 5,200엔. 대체 일본엔 먹으러 간거냐고 물으신다면, 숙박비 아낀 걸로 죽어라 먹었습니다라고 밖에 답을 못 드리겠어요. 사실, 편의점에서 사 먹거나 마트에서 도시락 사서 숙소에서 먹는 게 훨씬 저렴하지만 하루에 한 끼 정도는 흐드러지게 먹자는 주의인지라, 게다가 타국인지라 먹는 거엔 돈을 안 아꼈습니다 (거지각...망했어요).

밥을 먹고 나라는 뭐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지하철역에 갔더니 관광안내소가 있더군요.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라 책자도 많고, 이런저런 투어 프로그램도 많이 있습니다. 직원분들도 친절하구요.

아니, 그런데 죄다 사슴 인형? 알고보니 나라의 마스코트는 사슴이라더군요. 시카 (しか)군이 동네방네 바글바글. 이렇게 인형으로 보는 사슴은 참 귀여운데 (알고보니 이런저런 만행을 저지라고 다니더라는).

안내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한국어 포스터를 보고 이거 프로그램 하는 거냐며 물었더니, 자기네는 모르는 거라며 기다려 달랍니다. 5분간 통화를 하더니 그 프로그램 없어졌다고...

도보 투어 프로그램이었는데, 두 시간 정도 걸어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설명도 듣는 좋은 기회였는데. 종이접기 (折り紙 - 오리가미)나 할까 했다가 비행기도 못 접는데라며 깨끗하게 포기.

하쿠츠루자료관에서 사온 20도짜리 매실주와 쌀과자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생각보다 달고, 생각보다 진한,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맛난 이 술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는 (주류판매점을 그렇게 쑤시고 다녔는데도 콧빼기도 안 보이더군요. 한 병 더 살 걸).

특별한 일 없이, 내일은 하루종일 걸어다녀야 하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과음을 했습니다. 까짓거 눈 뜨는대로 다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중에 알고보니 나라에 며칠씩 있는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오사카나 교토에 숙소를 잡고 하루 정도 구경하러 오는 게 대부분이랄까 (하긴, 경주에 며칠씩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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