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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통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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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석 Jun 13. 2017

통번역사?

10. 준비물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도 더 글을 안 쓰네요.

시절이 하수상한 건 아니지만 뭐 원래 글을 잘 안 쓰기도 하고 

못 쓰기도 하다보니 잘 안 쓰게 됩니다.


간만에 업자모드로 돌아와서 한 번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6월 9일 금요일 오랜만에 동시통역을 했습니다

전 부스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데 잘 안 불러주네요

반 년만에 부스 들어갔나...


보통 동시건 순차건 통역이 있다고 하면 준비할 게 좀 많습니다

특히 동시의 경우 순차보다 준비물이 더 많은데요

이번에는 대체 뭘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물론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딱 이거다라고 할 순 없지만 

저의 경우 이렇게 준비하고 다닌다는 정도로 봐주시면 될 듯합니다


1. 필기구 (가지가지)

필기구의 경우 이래저래 종류별로 갖고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통을 아예 들고 다니기도 하고, 양복이나 자켓 안쪽에는 볼펜 두세 자루 정도를 늘 준비하는데

아무래도 글을 빨리 써야하는 경우가 있다보니 가는 펜보다는 1미리나 1.2미리 볼펜을 선호합니다

아무래도 노트테이킹이 빨리빨리 이뤄져야 하다보니 펜이 안 나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선

두어 자루씩은 늘 갖고 다니는 게 편하죠

요즘은 게을러져서 순차할 때 아예 노트테이킹을 안 하기도 하지만

언제든 준비는 해둡니다. 안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2. 수첩 (두어 가지)

위로 넘기는 스프링노트를 선호합니다. 옆으로 넘기다보면 거치적거릴 수도 있고

적는 도중에 방해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죠.

노트도 두어 개 준비해서 다닙니다. 쓰다보면 찢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적을 일도 많고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갑자기 움직여야 할 경우 신경쓰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재킷에 들어가는 크기의 작은 수첩과 펜은 늘 챙겨둬야 낭패보는 일이 없거든요.

물론 못 챙기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특히 순차 들어가서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중고생들 쓰는 알록달록 노트보다는 무채색의 노트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몰스킨을 선호하는데요, 아무래도 회의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튀지도 않고

나름 깔끔해보이는 효과도 줍니다. 네, 이것도 TPO라면 TPO겠네요

노트는 한 면씩만 적습니다. 뒷면에 적다보면 넘기고, 신경쓰고 비치기도 하기 때문에

한 면씩만 죽죽 쓰고 다 쓰면 그 다음에는 뒤집어서 다시 쓰면 끝


3. 구강 스프레이 (또는 가그린)

아무래도 저는 담배를 피우다보니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칫솔을 갖고 다니면서 양치하는 것도 좋지만 노상 양치를 할 순 없고

가그린같은 경우 뱉어내야 하기 때문에 스프레이가 좋습니다

가끔 한두 번 칙칙 뿌리면 완전히 해결은 안 되겠지만 나름 효과는 있습니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위생이나 이런 것들에 신경이 쓰이네요

(특히 여성분들은 더 많이 신경쓰는 듯)


4. 명함 (명함케이스)

의외로 중요합니다. 프리랜서라 명함 안 들고 다녀도 된다고 하는데

명함을 주고, 안 주고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보이는 것도 있고

일을 더 할 수 있느냐 없느냐도 갈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명함은 갖고 다니는 게 좋습니다. 아니, 갖고 다닙니다.

(네, 프리랜서는 혼자 다 해야 합니다. 영업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비용처리도 해야 하고)

명함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명함 케이스에 명함 여유있게 넣어 다니고

명함 주고받고 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합니다.


5. 녹음기 (또는 녹음 앱)

녹음은 필요할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만 나중에 복기 차원에서 좋긴 합니다.

보통 일 끝나면 더 이상은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뭔 녹음기냐라고 하겠지만

녹음해놓고 나중에 들으면서 (사실 이게 진짜 고역입니다. 오글거리고 귀찮고 짜증나는)

이런 부분은 이렇게, 저런 부분은 저렇게 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요즘 스마트폰 녹음 기능이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보이스레코더가 있으면 더 좋겠죠.

이렇게 말하면서 전 안 씁니다. 네네, 압니다만 안 씁니다.


6. 태블릿이나 노트북

이건 순전히 개인의 취향인데요. 손으로 적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노트테이킹을 말 그대로 태블릿이나 노트북에 쳐가면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적는 것보다 빠르고, 뭔가 있어보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속기사도 아니고 타이핑에만 집중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크게 추천하진 않습니다. 몇 번 해봤는데 좋긴 했지만.

그러나 자료 검색용으로는 좋습니다. 통역하다보면 자료검색을 할 경우가 생길 때도 있고

갑자기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검색할 때도 있고 (거의 없다고 보시는 게)

태블릿은 직접 화면에 필기가 가능하니 더 좋은 부분도 있겠죠.

회의자료 출력해가는 대신에 파일로 넣어서 가져가면 부피도 줄이고 좋습니다만

전자책보다는 여전히 종이책이 잘 읽히는 저 같은 경우에는 자료집과 같이 준비합니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하는 거죠. 특히 동시통역 들어가서는 두 가지 함께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번거로울지도, 중복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준비는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7. 이어폰이나 헤드폰 (동시)

개인의 취향입니다. 보통 부스 안에 헤드폰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편한 헤드폰이나 이어폰이 있으면

갖고 다니는 게 훨씬 좋죠. 좋은 제품은 잘 들리기도 하고, 본새도 나고.

이어폰보다는 헤드폰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머리에 딱 고정이 되는 것은 물론

이어폰처럼 치렁치렁하거나 한 쪽 귀를 열어놓을 때 매달리지도 않기 때문에 선호합니다


그런데 헤드폰은 임피던스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헤드폰은 보통 임피던스가 높기 때문에 (제가 쓰는 건 250대)

앰프가 따로 없으면 소리가 엄청 작게 들립니다. 

그래서 헤드폰 앰프를 따로 들고 나가기도 했는데 이러다 망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임피던스가 낮은, 아웃도어용 헤드폰이 좋습니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도 좋지만 배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경쓸 게 많구요

부피 크지 않고, 임피던스 낮으면서 소리 짱짱한 제품으로 고르시면 됩니다

(보통 아웃도어용 헤드폰은 임피던스 32옴 언저리 정도 합니다)


8. 주전부리, 음료수 (동시)

뭐 회의에 따라 다르겠지만 순차하면서 앞에서 뭐 먹기엔 그렇고

동시할 때는 다과를 조금 챙겨오기도 합니다. 일하다보면 당 떨어질 때가 있어서요.

그리고 파트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올 수도 있기 때문에 (안 그러는 게 좋지만)

마실 건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목 잠길 우려가 있으니 물은 꼭 준비해두세요

(주최측에 이야기하면 생수 주니까 여유있게 두당 두어 병 정도?)


9. 무음모드 (또는 방해금지모드)

순차할 때야 어차피 전화기 못 들여다보니 상관없지만

동시하다보면 검색해서 파트너 보여줘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괜히 진동으로 놔봐야 좋을 거 없습니다.

무조건 무음모드, 특히 아이폰은 달 아이콘을 누르면 방해금지모드가 됩니다

들어오는 전화 안 받고 (번호는 남습니다) 메시지 들어온 거 확인 가능하고

인터넷이나 메시지 보내는 거 가능하기 때문에 아이폰 사용자는 무조건 방해금지모드로 놓으세요

통역하다 전화오면 정말 난감합니다. 특히 벨소리 울리는 게 마이크 타고 리시버로 들어가면...

다행히 그런 실수한 적은 없지만 진동으로 놓아도 신경쓰이기 때문에 늘 방해금지로 놓는 게 좋습니다


10. 배려

동시통역은 좁은 공간에서 2인 1조로 이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호흡과 배려가 중요합니다.

파트너가 힘들어하면 괜찮냐고 사인도 보내고, 숫자나 고유명사 등은 적어서 보여주기도 하고

더워하면 물도 갖다 주는 등 신경을 써주는 게 좋습니다.

물론 그 전에 파트너에게 이런저런 걸 물어봐야죠.

마이크는 어떻게 가져갈 것이며, 언제 내가 들어갈지, 힘들면 어떻게 사인보낼지

이런 것들을 사전에 이야기해서 협의해 놓는 게 좋습니다.

상대방이 살짝 힘들어한다고 마이크 무작정 뺏어오면 자신은 배려라고 할지 모르지만

파트너 입장에서는 자기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감정상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두어 번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나중에 오해였다고 사과하고 잘 풀리긴 했지만요)


물론 이외에도 포스트잇 등을 준비해서 입에 잘 안 붙는 용어들을 적어놓긴 하지만

경험상, 그리고 동료 통역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적어놓은 용어는

거의 안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냥 마음의 위안이라고...)


개인 편차가 워낙에 크다보니 이게 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 하다보면 꼭 필요한 것들이 생기니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습니다

모자란 것보단 좀 남는 게 좋으니까요

(그래서 내 살이 많은...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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