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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oo Kim Aug 26. 2020

[번역] 세 악마 (5)

루터가 말하는 악마, 밀턴이 말하는 악마, 괴테가 말하는 악마

이것이 밀턴의 사탄의 이야기다.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와 대조하면 사탄에 대해 획득한 사유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더욱 쉬울 것이다. 한편 밀턴의 사탄에 대해 지금까지 말해온 것들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를 구상하기 위해 수고를 들여야 할 것이다.

괴테가 그의 메피스토펠레스의 의미를 두고 의도한 전부를 단일한 표현으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괴테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장난질과 악마적 전횡을 통해 특정한 의미를 엄밀히 추구하여 그를 모두 명확히 해왔거나, 혹은 악령을 살아있는 인격으로 단호하게 비유했고, 그를 자신의 다른 캐릭터처럼 다루지 않고 늘 항상적이고 극악무도하게 두면서도 의도적으로 결코 그의 행동을 해설의 진의와 병행시키지 않았다. 그렇기에 메피스토펠레스를 우리가 연구하고픈 희곡의 등장인물로 파악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첫째로 사탄 자신이 음모에 종사할 때 희열을 느낀다고 구상한 개념을 채용하여 사탄과 메피스토펠레스의 관계를 확립하면 전체적으로 올바른 궤도에 오를 것인데, 그 골자는 사탄이 그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몰두했고 메피스토펠레스가 사탄의 6000년 후 모습이라 가정하는 것이다. 밀턴의 사탄은 자신의 장래의 기능을 결정하고 우주의 다른 영역에 대한 모든 관심을 단념하여 그에 따라 이를 보다 철저히 소유하고 주입시킨 타락한 대천사이다.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의 새로운 소명에 따라 6000년의 고초와 변동을 거친 동일한 존재이다 : 더 작고, 평균적이고, 무지하나, 백만 배는 더 교묘하고 현명하다. 이 관점을 확증하고자 우리는 말이 난 김에 『복낙원』의 사탄을 언급해보려 한다. 거기서 그는 아직 숭고하고 밀턴적인 존재이며 지고한 사유와 논쟁을 다루나, 그의 태도에선 새로운 행보에 소비한 4000년의 영향을 배신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마귀가 그리스도에게 접근해 유혹을 시작할 때 그의 외견에 대한 설명은 영락없이 메피스토펠레스와 흡사하지 않은가? 그리스도가 사십 일간 단식하며 우거진 숲 속에서 생각에 잠겨 홀로 걷고 있을 때, 배후의 마른 나뭇가지가 타닥거리는 가운데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는 돌아보았다.


이제 초라한 의복을 입은 노인 하나

따라오는데 보아하니 길 잃은 암양을 찾는지

삭정이라도 긁어모으려는 듯. 그리하여 바람이

세게 몰아치는 겨울날 저녁에 들에서

젖어 돌아오면 몸이라도 녹이려는 것인지.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 노인은 보았다. 노인은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보며 뒤를 쫓더니 이렇게 말을 꺼낸다.


이 설명의 모든 세부가 과거 4000년간의 문명의 매우 두터운 부분으로부터 어떻게 이끌어졌는지, 그리고 이 그림의 전체적인 효과가 (혼자서는 만나기 꺼림칙한)메피스토펠레스의 외관을 한 사람을 시사하는지 관찰하도록 하자. 확실히 여백이 있다면 사탄의 메피스토펠레스로의 변천을 나타내기 위해 『복낙원』을 더욱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괴테로 넘어가야 한다. 


제시된 관점에서 메피스토펠레스를 보자면(물론 괴테 자신이 그의 메피스토펠레스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는 가정되지 않는다) ‘천국의 프롤로그’에서 꽤 많은 통찰을 얻게 된다. 여기서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요소로부터 그를 추출할 수 있으며, 그의 예전 동치(역자 : 사탄)와는 대조적이다. 장면은 밀턴적이다. 천국의 주민들은 옥좌 주변에 모이고, 세 대천사 라파엘, 가브리엘, 미카엘이 주를 찬미하고자 앞으로 나선다. 그들의 노래의 테마는 ‘창조’이다. (창조란)밀턴의 작품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 행해질 사건이 아니고, 우주의 단조로움을 다채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고 있으며 창대하게 이루어질 만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밀턴은 주로 시각에 호소하여 그의 이미지는 명확하며 수미일관하지만 괴테는 시각과 청각에 동시에 호소하여 소리와 비유를 서로 종횡무진 춤추게 함으로써 독자적인 방법으로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야생과도 같이, 뚜렷하진 않지만, 압도적인 꿈과도 같다. 라파엘은 태양이 천국을 가로질러 비슷한 별들과 입을 모아 노래하는 광경을 묘사한다. 가브리엘은 지구가 그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반쪽이 빛 속에서 반짝일 때 다른 반쪽이 그림자에 잠겨 있는 광경을 묘사한다. 계속해서 미카엘은 매혹적인 대기와 그 속에서 맹위를 떨치는 폭풍을 노래하며, 뇌격의 언령을 불어 날려 육지와 바다에 돌풍을 일게 한다. 그리고 셋은 교향곡처럼 폭발하여, 잔잔한 명상으로부터 힘을 끌어내 유일신(주)의 모든 작품이 창조된 그 날과 같이 빛나며 영광되다고 선포한다. 천국이 창대한 넘실거림에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는 그 순간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치고 들어온다.


메피스토펠레스 :

이거 주인 영감님, 또 이렇게 오셔서

저희 꼴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물어 주시고

게다가 늘 저 같은 것도 기꺼이 만나 주시니,

저도 이렇게 하인들 속에 끼어 나타났습니다.


으와, 뭐 이런 부조화가 다 있을까! 어조, 목소리, 내용, 운율의 강약, 이전에 행했던 것과는 끔찍할 정도로 어긋나 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화자이다. 그는 뒤에 서서 그를 응시하며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대천사들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노래를 마치자 그는 자신이 이야기할 차례라 생각하고 곧바로 말을 꺼낸다. (여기선 영역문으로 읽어보도록 한다)


메피스토펠레스 :

이거 주인 영감님, 또 이렇게 오셔서

저희 꼴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물어 주시고

게다가 늘 저 같은 것도 기꺼이 만나 주시니,

저도 이렇게 하인들 속에 끼어 나타났습니다.

용서하십쇼, 저는 고상한 말을 쓸 줄 모릅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모두 저를 비웃을지 모르지만!

점잖은 체해 봤자, 별 수 없이 웃음거리만 될 뿐입니다.

물론 웃음 같은 것은 잊으신 지가 오랜지 모르겠습니다만요.

태양이니 천지니 하는 것은 저도 모릅니다.

제 눈에 띄는 것은 오직 인간들이 고생하는 꼴뿐입니다.

하긴 이 지상의 어린 신(神)들은 언제나 같은 꼬락서니를 하고 있어서

천지개벽하던 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기묘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그들에게 하늘의 불빛 같은 것을 주시지 않았으면,

좀 더 잘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놈들은 그것을 이성(理性)이라 부르고 오직 그것을,

어느 짐승보다도 더욱 짐승답게 사는 데에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거북합니다만 제게는 그 인간이란 것들이,

늘 푸르르 날고, 나는 체하다가는 펄쩍 뛰고

곧 풀 속에 틀어박혀, 낡아빠진 노래나 부르는

다리가 긴 메뚜기 같단 말씀입니다.

차라리 언제까지건 물 속에나 누워 있었으면 좋으련만,

거름 더미만 보면 곧 코를 쑤셔 박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부끄럼 없는 동시에 너무나 비겁하기에 그는 긴장을 유지하며 말을 길게 이었으리라. 주主는 중간에 끊지 않고 묵묵히 이를 들었다.


이 연설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천성을 공표하고 전시하고 있다. 언어를 모르고선, 메피스토펠레스 안의 부끄러움, 뻔뻔함, 유창함, 현명함, 냉소, 비아냥거리는 기질, 마음의 욕구, 감정의 욕구, 열심의 욕구, 목적의 욕구, 완성, 승인, 회복 불가능한 악마를 보지 못하고 이는 그에 대한 본래적인 독해를 좀처럼 이행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거기다가 메피스토펠레스는 솔직하게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대천사의 노래에 대한 음험하고 비아냥대는 암시 가운데 그는 ‘그’가 능숙하게 말할 재능이 없다고 말하며 사실상 밀턴 식으로 될 생각이 없다고 공표한다. ‘그’는 태양과 우주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라파엘, 가브리엘에 미카엘은 그러한 일에 익숙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이 우주가 어떻게 창대하게 번영하는가, 그리고 태양과 혹성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게 이어지는가 말하게 두고는, 그는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해 한두 마디 말할 뿐이다. 확실히 비교가 그날의 순서였다면 작은 ‘주를 닮은 자’, 인간은 그들이 만들어진 날과 마찬가지로 기묘하다. 그리고 곧바로 놀라운 뻔뻔함과 함께 일련의 발언을 그는 개시한다. 발언의 목적은 저 아래 지상의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그의 생각으론 인간의 천성이 실패작이라 판명됐다고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청중의 혐오감을 신경 쓰지 않고 아무에게도 제지받지 않은 채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 자가 과연 『실낙원』의 사탄인가? 이 자가 그 몰락한 대천사인가? 이 자가 전능자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몇 루드의 거리를 떠다니고, 불의 피라미드처럼 위를 향해 발포하고, 선택한 공간이 어디든지 이동하고, 별과 별 사이로 사명을 지니고 질주하고, 마침내는 가장 약할 때의 우주를 습격하고 자신의 영혼의 독극물을 새로운 창조물에게 주입하는 거대한 계획을 고안한 그 자가 맞는가? 그렇다, 바로 그다. 그러나 아아, 그는 어떻게 변모했는가! 육천 년 간 최초에 시작한 행보를 계속하며, 자신이 선택한 기능을 실행하며, 인간 천성에 악마의 장난을 치며, 더 창대한 물리 법칙 속에서 모든 관심을 철회해 왔다. 결과, 그 자신이 예상한 대로 한때 위대하고 웅장했던 그의 천성은 작아지고 악의에 차고 수축되었으며,


“변해버렸으니, 이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다 염색공의 손에 염색물이 든 것과 같다”

<Shakespeare Sonnet 111> 中


그가 작열하는 모래의 황야를 여행했을 때처럼, 그에게 남아있던 대천사의 권능은 진작 옛날에 증발해버렸다. 이제 그는 삭막해지고, 바싹 말랐으며, 놀림거리인 영혼이다. 자신의 장래의 존재를 계획하고 악마가 되기를 결심한 순간, 그는 자신의 천성의 파멸을 예측했고, 그의 오랜 동료 라파엘, 가브리엘, 그리고 미카엘 앞에 나타나야 한다는 기묘한 감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들 앞에서 더 이상 대천사가 아닌 허세꾼이나 다름없는 역겨울 정도로 태연자약한 존재로 서 있다. 그의 영광의 시대에조차 그들과 그는 달랐다. 그들은 숙고를 탐닉했고 그는 전적으로 충분한 활력을 타고났다는 감정에 차 있었다. 그리고 지금 보라! 그들은 변함없이 주의 시종이며 그날의 온유한 역사를 외경한다. 그, 음모를 꾸미는 자, 열성적인 대천사였던 자는 영리하고 냉담한 메피스토펠레스로 꾀까다로워지고 문명화되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현대 사회의 악한 영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한 개인이 살아온 역사에서 그 영이 사역하는 예증이다. 선택된 사례는 고결한 자. 파우스트, 이 웅대하면서도 참을성이 부족한 천성을 지닌 남자는 보편적인 감정을 열망한다. 모든 인간의 방식과 모든 인간의 습득에 전적으로 불만과 혐오를 갖고, 아니, 인간 천성의 구성 자체에 번뇌하며, 그는 자신의 혼을 흘러넘치게 하길 갈망했다. 그렇게 하면 바람과 뒤섞여 우주의 가장 피 끓고 가슴 뛰는 영의 일부가 되어 만물의 정수를 알게 될 것이었다. 그는 자살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 자신과 싸우는 위대한 천성에게 메피스토펠레스가 접촉했다. 극 전체에 걸쳐 파우스트의 혼을 손에 넣는 것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매우 열성적인 갈망의 대상이라는 증거가 없음에 주의해야 한다. 물론 그는 이를 바랐으며 시야에 두었다. 따라서 그는 파우스트로부터의 연고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우린 수시로 그를 발견하고 파우스트의 궁극적인 파멸을 예상하고는 혼자서 싱긋 웃는다. 그러나 대체로 그는 그를 실행하기 위한 진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사실 그는 줄곧 아무 목적도 없는 채이다. 줄곧 그의 동기란 악마로서 행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파우스트와 어울리는 건 비즈니스인 동시에 동지로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에서 파우스트가 아닌 자신의 만족을 연구한다. 파우스트는 자신이 그에게서 기대할 권리가 있었단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새롭고 ‘짜릿한’ 악마학의 일부를 즐길 수 있으리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자신을 근심시키지 않는 장면들 여기저기로 끌려 다닌다.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가 여느 장소로 들어가면 악마는 파우스트의 곁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장난질이나 기타 등등을 행한다. 그것이 끝나면 팔짱을 끼고 홀로 서 있던 파우스트에게 돌아와, 우울하게 올려다보는 그에게 ‘이보다 더한 여흥거리를 바랄 수 있겠느냐’ 묻는다. 이제 이것은 그의 희생자의 혼의 소유를 취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악마적 의도의 행위에 불과하다. 밀턴의 악마였다면 더욱 표적을 향해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였다면 더욱 자기부정적이었을 것이며 그의 희생자를 보다 익살적인 상황 안에 두었으리라. 그러나 메피스토펠레스는 아주 국지적인 차원의 악마이다. 그의 악마 행위는 파우스트에 대해 국한되어 있다. 그가 연구하는 것은 파우스트를 기쁘게 하는 게 아닌, 자신을 위한 충분한 상성의 활동을 찾아내 가능한 한 단기간에 가능한 한 많은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괴테의 심중에 있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성격의 이 특이성은 그가 운문을 통해 전달하는 우의적 의미의 특정한 흐름 아래 추측할 수 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극적인 군상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통해 추상적인 무언가 혹은 그 외의 것을 대표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성격은 극 전체를 통해 나타난다.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에서 파우스트와 그는 다양한 상황이 닥치고 그에 따라 다양한 개인들과 접촉한다. 그리고 메피스토펠레스가 이 가운데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그의 악마적 천성에 대해 점점 더 통찰하게 된다. 그는 두 가지 양식으로 자신을 명시한다. 하나는 말하는 양식, 또 하나는 행동 양식. 말하자면 우선 메피스토펠레스는 모든 주제를 관찰하며 회화 도중 온갖 종류의 명제를 던지는 습관이 있고 이들의 행간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매우 정확하게 그의 사물에 대한 시각을 간파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극의 한 축을 담당하며 이는 물론 특징적이다.


메피스토펠레스의 회화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놀라울 정도의 친밀함이며 이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나열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사람들에게 악마가 눈치 채지 못했다 여기는 일을 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는 부정을 행하는 데 통달한 존재다. 사회 어디든 연결의 느슨함이 있으면 그는 알고 있다. 멍청이의 관리 실수가 원인이 되어 나랏일이 혼란에 빠지면 그는 알고 있다. 그는 온갖 종류의 전문적인 사기에 통달한 존재다. 그는 어떻게 현학자가 사람들을 기만하는지 알고 있으며, 어떻게 성직자가 위선을 떠는지 알고 있으며, 어떻게 의사가 돈을 긁어모으는지 알고 있으며, 어떻게 변호사가 횡령하는지 알고 있다. 온갖 종류의 경찰 정보를 그는 푸셰Joseph Fouché를 방불케 할 정도로 완벽히 이용한다. 그는 심연에 발을 들일 만큼 들여놓아 두샤트렛Roland Duchâtelet처럼 그걸로 책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대량의 관측을 축적했을 뿐 아니라 그 관측을 일반화하여 그 장대한 교육의 원천들에 악을 예비했다. 인간의 마음이 절망적인 사색의 족적을 헤매고 있을 때 그는 그를 관측하고 있고, 이미 알고 있다. 대학이 쓸모없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연구로 나라의 젊은이들의 지성을 낭비하고 있으면 그는 알고 있다. 무신론의 정치가가 나라의 종교 제도를 악의적으로 금하고 있으면 악마는 그 예후를 예비하고 있다. 궁핍을 짊어지게 하고 사람들을 현혹하여 유익한 동맹 관계를 해체하게 하고 남자들을 잘못에 몸부림치게 하고 최후에는 신성모독과 함께 죽게 하는 존재가 무엇이든 악마는 모든 걸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는 사회악의 일람을 그릴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의 무질서가 원인인 특정한 기존 불만을 지적하고, 박애주의자가 스스로 분발하여 폭로하고 제거하여야 하는 정확한 악의 기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의 지식의 악마적인 특이성이 있다. 그가 정보를 축적한 건 박애주의자의 영이 아니라 악마의 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부정을 행하며 숨어 있는 곳으로 내려온 건 두샤트렛의 박애 넘치는 동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것은 그가 인간의 모든 비참함의 양상을 기뻐하며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악을 행함은 그의 전매특허이며 그 자신의 업의 세부까지도 맛보려 함은 당연하나 더 나아가 최초부터 활동하던 모든 악의 영으로서 그는 어떻게 기존의 온갖 종류의 범죄 행위에 정통하지는 못한 것일까? 마치 일기를 쓰듯 말이다. 자, 악의 지식과 그를 산출하는 욕구의 이 조합에 그의 성격의 본질이 있다. 이 조합은 끔찍하면서도 자연스럽지도 않고 인간적이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무엇이 악인지 깊숙이 조사하는 동기는 그를 수정하고 싶다는 욕구이다. 그리고 난봉꾼이 정말로 귀중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그러나 메피스토펠레스의 연설 어느 대목이든 사회의 부패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이 있고 근절해야 할 악의 교묘한 수단도 몇몇 있다. 그럼에도 언어가 경박하고 비꼬지 않는 문장이 하나도 없고 슬픔이나 선의에 찬 문장도 하나도 없다. 세계의 모든 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 어딜 가도 허튼 소리를 하며 협잡질을 한다. 태양 아래 보이는 건 단지 위선적인 성직자들, 교활한 변호사들, 신실하지 않은 아내들, 먹을 빵이 없어 우는 아이들, 서로 사기, 강도, 살인을 행하는 남녀들뿐이다. 꼴좋구나! 이건 그야말로 메피스토펠레스의 감정의 폭발이다. 실제로 메피스토펠레스가 악에 대한 그런 눈과 관심을 갖고 있는 게 그의 계산상 무언가 이익이 되게 하는 걸 막고 있다는 건 명백한 그의 지적 결함이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세계는 가능한 한 빨리 부패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반면 대천사와 같은 똑같이 보편적인 혼돈의 존재들은 선을 두고 악과 싸우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극중 메피스토펠레스가 연기하는 부분에 경의를 표하며 우린 이미 무언가를 말한 셈이다. 그에게는 파우스트와 관련된 세계를 걸어간다는 게 유일하게 악마를 연기하는 짜릿한 수단이다. 그의 개념상 매우 기민한 남자를 동료로 보유한다는 건 무엇이든 그가 관여한 것의 풍미를 깊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계속 파우스트의 뒤에서 웃고 있으며 그의 초월적인 사고방식에서 통렬한 즐거움을 이끌어내고 있다. 파우스트의 고귀한 자질은 모두 그의 그리스인과 게일인의Gaelic 냉정하고 악마적인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모든 강한 정념, 감상, 전도의 열의를 경멸한다. 그는 밀턴의 작품을 매우 만끽한다. 따라서 ‘천국의 서장’에서 그는 대천사들에게 그들의 노래의 장대함에 대해 끈덕지게 물어본다. 그는 그런 것들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정념 같은 것에 동조하는 게 천성이 아닐 따름이다. 그렇기에 그 자신이 감상적이라 가정하고 온갖 고상한 긴장감을 흉내 내자, 의미의 전체적인 지적 범위를 부여하는 덴 완전한 정의를 행했으나 늘 감상적으로 부적절했기에 실질적인 효과는 서투른 모방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에서 충분히 오락을 발견하였고 종국엔 자신을 잃는 데 대해 어느 정도까지 자신과의 화해를 이루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마저 진행해보자. 메피스토펠레스는 계속 악마의 행위를 한다. 애당초 파우스트가 무언가 제안할 때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관철하며 난관을 개시하기 때문에, 악행은 파우스트 자신에게 불어 닥치는 것이다. 그 후 다시 극의 다른 주역 인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한 마르가레테, 그녀의 어머니, 아이들, 그리고 그녀의 형제들의 살해 장면에서 관객은 일련의 행위에 악의를 느낀다. ‘악마가 저지를만한 짓이다’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순한 극의 보충부와 외전격 이야기에서도 그는 한결같다. 그는 항상 불필요한 협잡질을 하고 있다. 그는 아우어바흐의 술집에 들어가선 네 명의 술친구에게 자기소개를 하더니 이윽고 가난한 야만인들을 싸움 붙여 서로의 코를 자르게 한다. 그는 마사와 몇 분 담소를 나누어 이윽고 어리석은 노파가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게 한다. 파우스트 2부는 도처에서 악마가 행해지고 당혹함과 악마성이 조직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메피스토펠레스의 권능 아래서 파우스트는 여전히 침착하고 냉정하고 냉소적인 존재이다.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감정은 일종의 악마적인 분노이다. 관객은 아마도 극중 한두 번은 공포나 질풍 같은 느낌을 받으리라. 그러나 대체적으로 그는 감정을 잃어버린 영이다. 비참한 감옥 장면에서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펠레스의 말보다 그의 마음이 나타내는 건 무엇인가?


“가요! 갑시다. 당신을 그 애하고 내버려 둘 테란 말이요.”




<참고 문헌>


Paradise Lost / Paradise Regained (John Milton 著 / 유영 譯 )

Faust (J.W.Goethe 著 / 정경석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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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번역에 대한 권리는 David Masson과 University of Edinburgh, MACMILLAN AND CO.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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