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의 단상 (5)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97년도작 영화『큐브』. 저예산으로 엄청난 흑자를 본 영화이자, SF 장르의 한 획을 그은 영화다. 물론 그런 사실은 오랜 시간이 지나 인터넷이 발달하고나서야 알게 된 정보이다. 개인적으로는 개봉으로부터 2년 후 비디오로 볼 나이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소수素數 개념은 배우지 않은 상태였고,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인문학에 몰입하느라 등장인물 카잔이 얼마나 대단한 천재인지 실감할 만큼 수학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각 인물 군상들이 선택하는 행동은 어린 나이에도 참으로 흥미롭다고 여겼다.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지면서 나는 이것이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통찰에까지 이르렀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현실 사회에서 어떤 인물상을 대표하는지 정리해 보려고 한다.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자들 포지션.
그가 장기수이며 일곱 번 탈옥했다는 건, 그야말로 열악하고 비참한 상황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험을 쌓은 사회안전망 밖의 사람들에 빗댈 수 있다. 그래서 극한상황에서도 냉정함과 침착함을 죽기 직전까지 잃지 않았고, '단추를 머금어 입이 마르지 않게 하고' '신발을 던져 센서를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 전략'을 알려주며 솔선수범한다.
그러나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어 '생체반응 트랩'에 걸려 사망하며 관객과 일행에게 '신발 던지기만 가지고는(원초적인 행동양식으로 살기엔) 트랩을 피할 수 없다(세상이 꽤나 정교해지고 살벌해졌다)'는 메세지를 준다.
가장 보편적인 소시민 포지션.
홀로웨이는 사랑하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한 전적이 있는 등 나름대로 아픈 과거를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사는 평범한 보건의이다. 담배를 못 피워 히스테리를 부리는 모습이나 의사라는 직업상 봉사정신이 투철해서 후술할 지적장애인 '카잔'을 마치 보모처럼 아끼는 모습은, 인생을 근근이 살아가는 동안 타인과 교류하며 울고 웃고 때론 돕고 때론 싸우기도 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또한 하나같이 개성도 성깔도 강하고 제각각 이질적인 일행들을 사실상 정서적으로 잇던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사소한 감정 충돌을 한 쿠엔틴은, 통로 너머에 출구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자원해서 몸을 던진 홀로웨이를 난간에서 손을 놔 버린다. 후술할 쿠엔틴 항목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이는 '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그를 함부로 휘둘러 평범한 소시민을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완충재 역할을 하던 그녀가 죽음으로써 인물 간 갈등은 더욱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소장파 지식인, '배운 사람' 포지션.
리븐은 그 극한 상황에서 가장 어린 나이인데도 사실상 혼자서 출구를 찾을 실마리의 대부분을 풀어낸 재녀이다. 레네스가 죽고난 후 일행들이 공포에 떠는 동안 방들의 규칙(소수)을 알아내고, 홀로웨이가 죽은 후 언제 쿠엔틴에게 버려질 지 모를 '짐짝'인 줄만 알았던 카잔이 공학계산기급 암산 능력을 가진 서번트 증후군임을 알아내고 그를 어르고 달래며 출구까지 다다른다.
처음에 그녀는 강인한 체력을 지닌 쿠엔틴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실마리를 알고 난 뒤부턴 그녀가 주축이 되어 문제들을 해결하고 쿠엔틴의 잔혹함에 치를 떨며 홀로웨이의 타살 여부를 줄곧 의심하다가 그의 입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된 후엔 완전히 등을 돌린다.
그리고 출구의 광명에 감탄하며 워스에게 같이 가길 종용하다, 몇 시간 전에 워스와 작당해서 떨궈낸 쿠엔틴에게 심장을 관통당해 사망한다.
현실에서도 '깨인 사람'들이 강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나 단체, 학계 등에 알게 모르게 타협하다가,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가 그들과 다름을 깨닫고 독자적인 노선을 타는 것과 같다. 그들은 현실의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큰 뜻을 품은 교육자로서 미래에 희망을 걸고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비참하게 버려지는 면모 또한 적잖이 있다.
인본주의가 없는 공권력. 즉 전제 권력 포지션.
쿠엔틴은 일행 중 가장 강인한 신체 능력을 지닌 사람이지만 동시에 피도 눈물도 없는 난폭한 사람이다. 폭력적인 본성을 초반부터 보이고 있었으며, 사사건건 충돌하던 홀로웨이를 살해한 이후엔 그야말로 거칠 게 없어진다. 레네스가 죽은 뒤의 초중반부에선 그의 육체적인 민첩함과 강인함이 출구 탐색에 필요한 줄 알았지만, 리븐이 실마리를 찾은 이후부턴 그저 일행에게 폭력을 휘두를 뿐인 성격파탄자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카잔을 '모두가 살아남는 데 거치적거리는 것'으로 여기며 틈만 나면 버리려고 하는 건 '공공선을 위해, 다수를 위해 소수(약자)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와 그대로 들어맞고, 실마리를 찾은 리븐을 칭찬하는 듯 하다가도 그녀를 겁탈하려는 모습은 현실에서 '식자층''발언력이 강한 지식인'을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는 공권력과 딱 맞아떨어진다. 쿠엔틴이 일행에게 버림받기 직전에 리븐의 머리채를 쥐며 "야, 선생! 얘(카잔) 말 좀 듣게 해" 하며 윽박지르는 꼴사나운 모습은, 전제 권력이 심화될 대로 심화되어 지식인들을 마구잡이로 탄압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리븐을 죽인 후, 워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카잔까지 죽이려다 결국 워스에게 붙들린 채 움직이는 방 사이에 끼이는 바람에 몸이 두 토막 나며 죽게 된다.
의도치 않게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을 만든 데에 일조하고 당사자조차 그 시스템에 희생당하는 '기성 지식인' 포지션.
워스는 리븐과 별로 차이도 안 나는 젊은 나이에 큐브의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의심을 샀고, 쿠엔틴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했지만 결국 그 역시 큐브의 디자인 빼면 내부 퍼즐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희생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똑같은 지식인 포지션인 리븐에 비해 훨씬 과묵하고 시종일관 염세적이다. 이는 현실에서도, 한때 이상을 믿고 자신의 뜻을 관철한 게 전혀 원치 않던 방향으로 흐르는 걸 지켜본 식자층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다.
워스에 감정이입하기 쉽느냐 리븐에 감정이입하기 쉽느냐는 그런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대부분의 젊은이, 소장파 지식인들은 리븐 같은 사람이 많은데, 어떤 풍파를 겪느냐에 따라 워스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 결말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던 그가 리븐의 죽음에 분노하며, 쿠엔틴을 붙잡고 카잔에게 "빨리 가!" 하며 재촉하고, 쿠엔틴이 방에 끼어 두 동강이 나고 이윽고 자신도 조용히 숨을 거두는 모습은, 이루지 못한 정의를 곱씹다가 자신의 얼마 안 남은 기득권마저 버리며 그 유지를 이을 뒷세대를 남기려 하는 '기성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이' '가장 천연적인 동물 본연의 인간상' 포지션.
'소시민' '소장파 지식인' '기성 지식인'이 남긴 희망의 씨앗.
카잔은 작품 중후반 이전까진 그저 '짐짝'이었지만, 리븐이 제대로 된 법칙을 깨닫고 그걸 암산으로 구사할 수 있다는 게 밝혀진 시점에서 생존에 꼭 필요한 키 퍼슨이 된다. 그의 돌발 행동 때문에 쿠엔틴이 트랩에 죽을 뻔하기도 했지만, 결국 홀로웨이, 리븐, 워스가 끝까지 그를 버리지 않았기에 그는 리븐의 코칭으로 루트를 이끌어내고 출구까지 남은 사람들을 이끌 수 있었다.
아이의 순수함은 마냥 선하고 이타적이진 않다. 개미구멍에 끓는 물을 부으며 킥킥대고 개구리나 소동물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게 어린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의 훈육에 따라 그는 희망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홀로웨이가 쿠엔틴에 맞서 지키려 했던 카잔의 아무도(카잔 본인조차 그게 엄청난 능력인 줄은 몰랐다) 예상 못한 천재적인 암산 실력은, 아이 - 달리 말하면 신세대 - 의 미지의 가능성을 뜻한다.
그리고 카잔은 결국 '골칫덩어리'에서 '희망'이 되어 눈부신 바깥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그에겐 그 뒤에도 끝없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숱한 사람들이 큐브에서 죽는 걸 두 눈으로 보았지만, 큐브의 정체를 알리지 못하는 한 그는 바깥 세상에선 암산 천재도 아닌 그냥 지적장애인일 뿐이다. 홀로웨이같은 호인을 만날지, 리븐이나 워스처럼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줄 현인을 만날지, 쿠엔틴같은 사람에게 몸이 부서져라 괴롭힘당하거나 이용당할지는 알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포지션에 근접한 사람인가?
과연 우리는 큐브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2016.01.23
김 영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