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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oo Kim Jun 18. 2019

서브컬처와 철학 (2)

사르트르의 「닫힌 방」과 CARNIVAL


들어가며


“잘 알아 둬라, 애초에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거다.” 넥슨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 클로저스에 등장하는 ‘트레이너’ 라는 캐릭터의 대사이다. 세상을 구하는 일이랍시고 권력자들에게 번번이 이용당한 끝에 누구를 믿지 못하게 된, 그러나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어른이 되지 못한 ‘덜 자란 어른’의 방어 기제이다. 그러나 굳이 비하인드 스토리가 없어도 문장 자체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사르트르의 「닫힌 방」은 당시 친구였던 카뮈가 셋이서 할 수 있는 극본을 써 달라고 해서 2주 만에 써 준 작품이다. 처음 구상할 땐 공습을 피해 지하실에 들어간 설정이었지만 나중에 아예 지옥이란 설정으로 변경했다.

1944년 초여름에 초연한 본 작품에는 동성애 묘사가 등장하는데, 독일 검열 당국은 처음에만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너그러운 태도를 취한 데 비해 영국 대법관은 공연을 금지시켰단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CARNIVAL은 2004년에 S.M.L에서 시나리오라이터 세토구치 렌야瀬戸口廉也가 집필한 성인용 게임이다. 싸이코 능욕소설サイコ陵辱ノベル이라는 거창한 장르에 비해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된 세토구치는 이후 SWAN SONG, 키라☆키라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소설가로 전향했다. 인간의 불완전하고 어두운 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작풍은 여전히 컬트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타인은 지옥이다, 「닫힌 방」


가르생  들어봐요! 사람들은 나름대로 목표가 있는 법이에요. 그렇지 않은가요? 나로 말하자면, 나는 돈이나 사랑을 무시했어요. 나는 남자가 되고 싶었어요, 진짜 남자요.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어요. (...) 가장 위험한 길을 택했는데 비겁자가 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단 하나의 행동으로 인생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이네스  왜 못 하겠어요? 당신은 30년 동안 용기를 가졌다는 꿈을 꿨어요. 수많은 사소한 잘못을 그냥 지나쳤지요. 왜냐하면 영웅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니까요. 얼마나 쉬운 방법이에요! 그러고 난 다음 진짜 위험에 처했을 때 당신은 멕시코행 열차에 올라버렸죠.

가르생  나는 영웅주의를 꿈꾸지 않았어요. 내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어요.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이네스  증명해봐요.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에요. 인간은 행동을 통해서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에요.

가르생  독한 사람 같으니라고! 한마디도 지지 않는군요.

이네스  (...)가르생, 당신은 비겁자예요, 비겁자. 내가 그것을 원하니까요. 내가 원해요. 듣고 있어요? 내가 그것을 원한다니까요! 하지만 나는 아주 허약한, 바람 같은 존재예요. 나는 당신을 바라보는 한갓 시선, 당신을 생각하는 혼돈의 사고에 불과해요. (그가 손을 편 채 그녀에게로 걸어간다.)이제 큰 손, 남자의 거친 손이 펴졌네요! 그런데 무엇을 하려는 거예요? 손으로 생각을 누를 수는 없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나를 설득해야만 해요.

에스텔  가르생!

가르생  왜요?

에스텔  복수를 해요.

가르생  어떻게요?

에스텔  내가 키스해주세요. 그러면 이네스의 비명을 듣게 될 거예요.

가르생  그래요, 이네스. 나는 당신 거예요. 하지만 당신 역시 내 것이지요.

        (가르생이 에스텔에게 몸을 숙인다. 이네스는 짧은 비명을 지른다.)(...)

이네스  자, 뭐 해요? 당신 말대로 해봐요. 얼마나 사랑스럽겠어요? 비겁한 가르생이 유아 살해범인 에스텔을 그 남성적인 팔로 껴안는다. 여러분, 내기하실래요? 비겁한 가르생이 그녀에게 키스를 할까요, 못 할까요? 어디에 거실래요? 나는 모두가 보고 있는 당신을 보고 있어요. 나 혼자 관객이지요. 관객들의 소리가 들리나요? 가르생. 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냐고요? 중얼거림과 속삭임. ‘비겁자! 비겁자! 비겁자! 비겁자!’ 내게서 벗어나려 해봤자 소용없어요. 내가 당신을 절대 놔주지 않을 거니까요. 바보 같은 그녀 입술에서 무엇을 바라나요? 망각? 하지만 나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결코! ‘나는 반드시 당신을 설득할 거예요.’ 자, 이리 오세요. 내가 기다리고 있어요. 함께 가요, 이제…. 여주인이 부르면 얼른 달려오는 훈련받은 개처럼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보세요. 에스텔, 당신은 그를 안을 수 없어요, 결코.

가르생  (...)여기가 바로 지옥이군요.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었어요. 우리가 고문실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겠지요. 불, 유황, ‘초열지옥’,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 붉게 달군 쇠꼬챙이는 필요 없어요! 타인이 나의 지옥이니까요.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인 이네스가 인정하듯 그들이 함께 갇힌 곳은 지옥이다. 서로를 고문하는 고문실에서 가장 큰 고통은 아무리 거리를 두어도 고립된 상태로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각자가 두 명으로 편을 짜려 할 때마다 그들이 찾는 한 사람은 항상 제삼자에게 손을 뻗는다. 가르생의 대사처럼 “서로가 서로의 뒤를 쫓고, 회전목마 위의 말처럼 악순환에 빠져든다”.

가르생은 자신의 비겁함이 근본적인 겁 탓이 아니라고 정당화하려 타인을 의지하지만 그런 사람은 타인들이 자신에게 갖는 판단의 볼모가 된다. 이제 자신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이미지, 타인들이 자신에 대해 가진 이미지가 가르생을 혼란스럽게 한다. 에스텔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그는 열린 지하 감옥의 문을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에스텔은 남편을 속이고 애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고, 물에 빠뜨려 죽인 비겁한 사람이다. 역시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며, 가르생이 그녀에게 영웅으로 인정해 주길 원하듯 그녀도 그에게 책임감이 강한 여자라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제삼자인 이네스에게 그러한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 죽었기 때문에 거울에 비치지 않는 걸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에스텔은 자신의 모습을 비치는 타인들의 시선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네스는 타인들이 인식하는 ‘잔인한 동성애자’ 의 이미지를 기꺼이 실천한다. 그녀의 애인이 가스 밸브를 열어놓고 자살한 것은 같이 죽게 된 이네스 때문이다. 셋 중 가장 먼저 지옥을 인식한 것은 삶에서 제일 많이 괴로움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각자는 자기가 되고자 하는 바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따라서 그는 그들을 통해 확인된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갖는다는 사실, 이 두 가지를 서로에게 납득시키길 바라고 그러할 필요성도 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에서 인간관계를 두고 ‘어떤 쌍이든 각자는 주체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를 객체화하여 격하시키려고 경쟁한다.’ 고 설명한다. 하이데거의 ‘함께 있는-존재Mitsein’를 공격하며 사르트르는 ‘의식들 사이에 정립되는 관계의 본질은 함께 있는-존재가 아니라 갈등이다’ 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작품을 집필하고 15년 후 사르트르는 ‘타인이 나의 지옥’ 이란 말의 뜻이 왜곡되었다고 설명하면서, 타인들과 우리들의 관계가 뒤틀리거나 악화되어 타락한 경우에만 그 말이 적용된다고 밝힌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타인보다 중요한 건 없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타인들과 맺는 관계가 「닫힌 방」의 유일한 주제이며, 다른 주목할 만한 주제로 각인刻印encrustation과 자유를 지적한다. 각인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작업이 어렵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타인들은 시선을 통해 우리를 구속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한 사람이 모든 변화가 불가능한 세계에서 살 때 그는 이미 지옥을 만든 셈이다. 

하지만 또한 인간존재가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르생의 마지막 대사 “자, 자, 계속하죠.”는 관객들에게 셋 중 어떤 등장인물들과도 자신을 동일시하지 못하여 하여, 등장인물들과 달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은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지구상에 지옥을 만들어 냄을 믿게 되니 말이다.



타인에 의한 구제, CARNIVAL


이 이야기의 메인 캐릭터 세 명은 주인공 마나부学, 그의 교대인격 타케시武, 그리고 소꿉친구 리사理沙다. 게임은 「CARNIVAL」, 「MONTE-CRISTO」, 「TRAUMEREI」 세 장으로 구성되며 각각 마나부, 타케시, 리사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마나부는 이른바 이중인격자이다. 어머니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받는 과정에서 그를 받아들일 교대인격으로서 타케시를 만들어낸다. 어머니의 학대가 시작되면 마나부는 타케시와 교대하여 그에게 학대의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전가한다. 마나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만 직접적인 피해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기에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꾸로 타케시는 마나부가 나와 있을 때 기억을 갖고 있다. 이때쯤에는 마나부가 타케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기에, 마나부가 나와 있을 땐 두 인격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게 학대를 버틸 수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대처요법에도 한계가 오고, 어머니와 불꽃놀이를 보러 간 날 타케시는 그녀를 떨어뜨려 죽이고 만다. 타케시는 파괴 충동이 강한 인격으로 형성되었지만 애초에 마나부와 동일한 인격이었기에, 마나부가 정말 소중히 생각하는 상대는 결코 죽일 수 없다. 즉 죽인 건 둘 모두의 죄이다.


마나부에게는 아직 이 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 그의 그림자(타케시가 아니라 마나부의 메타 인격)는 타케시를 가두기로 한다. 이렇게 마나부는 타케시라는 인격을 완전히 인식할 수 없게 되고, 기억에 남아 있던 타케시를 친구 같은 것으로 오인하게 된다. 그렇게 모친 살해죄의 죄를 짊어지는 것을 건너뛰었다, 죄를 짊어지는 걸 견딜 수 있게 될 때까지. 타케시를 지워버리면 되는 일이었지만 원래부터 하나의 인격에서 분열했기에 불가능했다. 가능하다고 해도 그저 기존의 인격이 살짝 결여되는 정도이다.


한편 리사는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그런 아버지를 업신여기면서도 가면을 쓰고 ‘따뜻한 가정’에 적응한다. 리사는 마나부가 아직 타케시를 인식할 무렵 만나게 되었고 ‘왠지 모르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친구가 되었다. 리사는 타케시와도 교류하며 모친으로부터의 학대 이야기도 듣게 된다. 그렇게 마나부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타자가 된다. 자신이 받는 학대를 마나부나 타케시에게 말하는 일은 없었지만 분명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었다.


타케시가 모친을 죽인 그날 리사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찰에게 이야기하진 않았다. 하나뿐인 동료가 없어질지도 몰랐으니까. 그가 없어지고 나면 리사는 마음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겉치레용 가면만 남은 채.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현재, 타케시가 다시 깨어난다. 여전히 리사는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고 있었고, 가면을 계속 쓰고 있었다. 충동을 이기지 못한 타케시는 리사를 덮치지만 그녀가 처녀가 아님을 눈치 챈다. 마나부의 아군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안겼다는 사실에 타케시는 분노하여 리사를 배신자라 판정한다.


이제 세상에 마나부의 아군 같은 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타케시는 마나부에게서 자릴 뺏고 그를 괴롭히던 미사와를 죽여 버린다. ‘빌어먹을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마나부는 기억에도 없는 살인으로 용의자가 되어 있었다. 한 번은 체포되지만 경찰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리사를 만나 그녀의 집에 몸을 숨기고부터 마나부와 타케시는 빈번하게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마나부 역시 타케시의 목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리사는 마나부가 완전히 타케시를 눈치채기 전에 타케시의 오해를 풀기 위해 아버지로부터의 성적 학대를 고백한다. 오해가 풀린 타케시는 리사에게 독선적이고 서투르게나마 ‘사랑해’ 라 말한다.


그러나 심연에서 이를 들은 마나부는 아직 타케시가 자신의 교대인격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한때의 친구와 리사가 밀회를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의심암귀에 사로잡힌 마나부는 리사를 몰아붙이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마나부를 막기 위해 타케시는 강제로 그에게서 지정적을 뺏는다. 마나부의 의식이 건재한 상태에서, 자아를 물러 줄 여지도 없는 상황에서 그랬다간 마나부의 본래 인격과 뒤섞인 채 자신이 사라질 거라 예감하면서도.


그렇게 타케시가 사라지고 마나부가 남게 된다. 마나부는 리사와 함께 집을 나서고 한때 어머니를 죽인 공원에 도착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는 함께 힘내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가 아닌가. ‘내가 죽이지 않았지만 나와 같은 최초의 인류가 죄를 지었다. 그리고 그 원죄는 나에게 이어졌다’ 바로 기독교의 원죄 개념이다. 게임 제목인 카니발, 즉 사육제는 원래 가톨릭에서 금육, 단식을 하는 사순 시기에 돌입하기 직전 방탕하게 즐기기 위한 행사이다. 다가올 고난의 무거움에 앞서 위안하고 위로받기 위한 시간이다.


타케시는 어머니를 죽였고 마나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자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이미 어머니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이번에는 세상에 명명백백한 살인자가 되었다. 죄의 무게가 당장 눈앞에 닥친 것이다.


리사가 마나부와 친구가 된 것은 본능적으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마나부 역시 자신의 무지막지한 그늘을 숨긴 채 세상에는 웃는 낯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타케시의 살인을 번번이 감싸주었고, 자신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짓을 한 타케시를 미워하지 않았다. 세계 전체가 관계 나쁜 타자로서 마나부에게 지옥으로 다가왔을 때 그를 구원한 것은 역시 타인인 리사였다. 그러나 리사 역시 타케시에게서 구원을 받았다. 타케시는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동료였고, 마나부를 괴롭히던 미사와를 말리다 손찌검을 당하자 기꺼이 살인죄를 저지른 것도 타케시였다.


“믿는다는 건 참 힘든 일이야.” 타케시의 말에 담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믿는’ 행위는 ‘배신하지 않는 것’ ‘기대하던 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의 구제, 죄로부터의 구제로 이어진다. 사람에게는 온전히 기대하기 힘든, 사실상 신앙과 다름없다. 


<세계는 사랑해 주지 않는다.

죄를 구제해 주지도 없고 벌도 주지 않는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보완될 리가 없다.

하지만

세계를 사랑한다.

미래를 믿는다.

죄를 짊어지고 둘이서 살아간다.>


마나부의 마지막 독백은 분명 가짜 희망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를 품고 살아갈 수 있다. 일그러진 방식으로나마 그들은 서로 ‘믿는 것’을 확인했다. 닥쳐올 세계는 지옥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견고한 믿음으로 엮인 함께 있는-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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