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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Nov 27. 2024

학부모도 혼내는 스위스 교육 철학

한국식 암산법은 노!- 스위스 선생님에게 혼난 아내





한국을 떠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새롭게 정착하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무의식 중에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여기서는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평범하게 여겨졌던 능력이 여기서는 특별한 능력으로 평가받는 일도 있다.


스위스에 정착하면서 우리 가족은 한동안 현금만 사용하며 생활했던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신용카드 한도가 크지 않고 할부 제도가 흔하지 않아서 과소비를 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아끼고자 현금을 들고 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가끔 슈퍼 계산대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곤 했다.



▐ 거스름돈은 동전으로...



한국으로 예를 들자면 보통 물건 값이 9800원이라고 하면 우리는 10,800원을 계산해 주시는 분에게 건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동전 말고 1000원짜리 지폐로 거스름돈을 받기 위함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계산법이 친숙하고 1초도 안 걸려서 계산이 끝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내가 계산해야 할 돈이  15.70프랑이어서 나는 20.70을 건넸다. 그런데 점원이 먼저 20프랑 지폐를 받은 후에 내가 다시 0.70프랑을 동전으로 건네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나를 쳐다본다. 


15.70프랑이 나왔으면 20프랑 지폐로 충분한데 왜 돈을 더 주느냐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생각을 한다. 그러고는 다시 나에게 0.70프랑을 건네고 다시 20프랑을 가지고 계산을 해서 4.30프랑을 거슬러 주었다. 나는 왜 이런 상황이 생길까? 당시에는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아이가 커가며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 덧셈은 언제 배우나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교를 꽤나 다니기 시작했는데 숫자를 배우는 것이 너무나 느려 보였다. 


나: 2 더하기 2는 뭐지? 

딸 : 음... 4

나 : 잘했어!! 그럼 5 더하기 6은 뭘까?

딸 : 몰라요! 너무 어려운데? 하면서 손가락을 다 펴본다. 


아니... 학교를 다닌 지 꽤 됐는데 아직 이것도 못하는 거야? 우리 부부는 이렇게 그냥 나둬도 되는 건가? 뭐라고 좀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 자릿수 덧셈을 집에서 가르쳤다. 열심히 가르친 덕에 우리 딸은 8+7=15라는 것을 바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졌다. ^^



▐ 우리 아이가 천재라고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가 학교에서 한 자릿수 덧셈을 드디어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에서 면담을 할 일이 있었는데 학교 선생님이 우리 딸이 천재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신다. 엥? 천재? 무슨 말씀이지? 했더니... 아이가 덧셈을 너무 잘한다는 것이다. 이거 원... (한국에서 학교 다니는 애들이 여기 오면 바로 중학교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실 판이다.)


뭐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 한국인이 똑똑하지! 여기서 K 두뇌의 명석함을 드러내 보이리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으며 딸에게 물었다. 


나 : 반 친구들이 숫자 계산을 못하는 것 같아?

딸 : 네 못해요. 선생님이 8 더하기 9가 뭐냐고 물어보면 전부 머리를 숙이고 열 손가락을 다 펴고 중얼중얼 중얼(손가락을 접으며 세는 소리) 하다가 모르겠다고 해요. 

나 : 그래? 그럼 우리 딸은 공부 잘한다는 소리 들어서 좋겠네?

딸 : 그럼 좋지!



▐ 우리 부부의 욕심



그러고는 또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두 자리 숫자 덧셈을 할 때가 되었다. 딸이 숙제를 하는 것을 보니 이상한 방법으로 덧셈을 하고 있었다. 아주 복잡하게 말이다. 간단하게 하면 되는 것을 하나하나 따로 써가며 푸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아내가 나서서 한국식으로 몇 번 알려주고 말았다. 


딸도 한국식으로 쉽게 푸는 방법을 알려주니 이렇게 편한 방법이 있네? 하면서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딸의 표정이 좋지 않다. 물어보니 계산하는 것 때문에 선생님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우리 부부를 좀 보자고 하신다고 한다. 



▐ 스위스에 왔으면 스위스 방식대로!



우리 부부는 선생님께 불려 갔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집에서 아이 수학을 가르치냐고 하셨다. (수학요? 산수인데요 선생님;;)

아무튼 우리는 아이가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알려줬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먼저 집에서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치지 말라는 말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왜 학교에서 하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을 가지고 오려고 하느냐? 문제의 정답바로 맞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푸는 과정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교육방식이다. 그래서 답이 틀리더라도 과정이 맞으면 부분 점수가 주어진다. 그런데 너희 딸은 그 과정을 무시하고 답만을 적고 있다.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느냐?


초등학교에서 부모가 할 일은 숙제를 했느냐? 물어보는 것이 전부다. 나머지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을 아이에게 가르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선생님께 우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스위스에서 아이가 자라나게 될 거면 스위스 방식으로 배우게 해야지..." 생각했다. 

그 이후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계산하고 있는 딸을 볼 때마다, 우리 부부에게는 몇 번의 위기가 더 있었지만 꾹꾹 참아가며 더 이상 딸에게 계산법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급해 준 계산기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사칙연산을 배운 후에는 수학 문제를 풀 때, 암산으로 하지 않고 계산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뭔가 복잡한 수학 문제를 접할 때 그 문제를 푸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계산기를 사용하여 사고한 과정을 숫자로 풀어낸다. 



▐ 교육 철학의 차이를 받아들이며



무엇이 맞다!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스위스의 교육 방식을 보면 초반에는 놀랄 만큼 엄격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줄을 그을 때도 그냥 막 그을 수 없고 꼭 자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다양한 접근 방식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스위스는 공부에 열정이 있고 학업적인 진로를 희망하는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점점 난이도를 높이며 공부하다가 대학교와 대학원에서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 성과를 만들어 낸다. 이 작은 나라에서 취리히 연방공대(ETH)나 로잔공대(EPFL)와 같은 세계적인 공대가 나온 이유도 이러한 철학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을 방치하지도 않는다. 각 분야의 전문가로 키우기 위해 다양한 경험의 기회들을 아주 이른 나이부터 제공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공부는 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부러운 포인트이다.


우리는 아이를 기르면서 너무 답답해 보이는 것부터, 또 가끔은 너무 자유로워 보이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의 교육 방식을 경험해 나가고 있다. 물론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에 맞는 시스템이 있을 것이고, 그 시스템이 자리를 잡게 된 이유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오늘도 그들이 그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든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있다.






다음 에피소드에는 문화 차이로 인하여 또 겪게 되었던 학교 선생님과의 소통의 문제에 대한 부분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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