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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Nov 22. 2024

처방받은 약의 비밀 - 스위스 의료




처음 스위스에서 병원을 다녀온 후 받은 청구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병원? 가능하면 가지 말자!” 그리고 만약 급하게 가게 되더라도 꼭 필요한 질문만 하고, 최대한 빨리 진료실을 탈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왜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지 모르시는 분은 이전 에피소드를 참고하시길.


 딸의 얼굴에 생긴 반점



1년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딸아이 얼굴에 붉은 반점 같은 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어, 발진인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퍼져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고름도 나오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병원 가봤자 특별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텐데…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청구서… 집에 있는 연고나 좀 바르고 며칠 더 버티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며칠 동안 아이 얼굴에 보기에 흉한 것들이 있으니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가, 주말이 되어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니 딸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되었고, 결국 “병원에 가면 안 되겠냐”라고 물어왔다. 의사 선생님께 아이 얼굴을 보여주고 상담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 또다시 방문한 응급실



이런 상황에서 아빠가 되어 가지고 “돈 아껴야 하니까 병원 가지 말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결국 저번에 방문했던 그 응급실로 가기로 했다. 응급실로 가는 이유는 한국처럼 사전 예약 없이 당일에 그냥 가서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 응급실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번에 한 번 가봤던 곳이고, 의사 선생님들도 친절했기에 딸도 별말 없이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병원에 와서 보니 딸 얼굴이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무슨 심리일까? 병원만 오면 자동으로 호전되는 마법이라도 있는 건가?


아무튼 우리는 또다시 깔끔한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딸 얼굴을 한 번 쓱 보고는 질문하셨다. “며칠 정도 이랬어요?”

“3일 정도 된 것 같아요.” 우리가 대답했다.


선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연고 하나 처방해 드릴 테니 집에서 그거 바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시려는 찰나, 우리는 서둘러 대답하고 최대한 빨리 진료실을 나오려고 했다. 마음속에서는 “추가 요금 내지 않으려면 5분을 넘기면 안 된다! “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5분에서 6분으로 넘어가는 순간 38프랑(5만 원)이 추가로 청구된다니! 우리는 서둘러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받아 나왔다.



▐ 처방받은 약의 비밀은



병원에서 약국까지는 100m 거리였다.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크게 문제가 아니라니 다행이네. 선생님이 약만 잘 바르면 괜찮아진다고 했으니까, 약 사면 잘 발라야 돼! 알았지?"라고 딸에게 말했다.


약국에 도착해 처방전을 보여주었고, 약사님께서는 우리에게 연고를 건네주셨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연고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에도 있는 것 같은… 그렇다, 그것은 바로 후시딘이었다!





Fucidin… 어라, 이거 후시딘이잖아?” 우리 부부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가격이 16.55프랑(2만 5천 원) 정도라서 착해 보이는 건 뭘까? 감사한 마음으로 불어로 써진 후시딘을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집에 있는 후시딘보다 스위스에서 비싸게 주고 산 후시딘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우리는 그 Fucidin을 딸 얼굴에 꼼꼼하게 발라주었다. 



 또다시 날아온 청구서



2주 정도 후에 드디어 병원에서 또 청구서가 날아왔다.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예전처럼 상담비용 추가 요금은 내지 않았고, 진료비로 240프랑(37만 원)이 청구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37만 원의 진료비를 내고, 2만 5천 원을 주고 예쁘게 포장된 Fucidin을 처방받아 사 온 것이다. 그것도 집에서 딸에게 발라주던 한글로 된 좋은 후시딘을 놔두고 말이다! 우리 부부는 이후에 이 후시딘만 보면 그날의 일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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